그냥 이야기. 내가 일기장을 선물한 이유

익명

그냥 이야기. 내가 일기장을 선물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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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언니가 있습니다.


어느날 가볍게 건강검진을 하던 도중에 혈액 수치가 이상해서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고, 언니는 혈액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혈액암이라는게  참 희한합니다. 골수에서 혈소판을 비롯한 피에 관련된 수치들을 정상으로 생성해내지 못하고 동시에 암세포 수치들이 올라가면서 몸을 힘들게 만듭니다.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질 경우에는 내부 출혈 등 위험한 상황에 직면 할 수 있어서 결국에는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조혈모세포이식수술 이라는 것인데, 옛날에는 골수 이식 수술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혈액에서 필요한 성분들만 추출해서 환자 몸에 이식하면 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그 전 과정이 조금은 무섭습니다. 몸속에 있는 암세포를 죽이고, 몸의 세포들을 무의 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면 암세포 뿐만 아니라 몸의 건강한 세포들까지 죽게 됩니다. 이때 균이라도 감염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모든 과정은 무균실에서 진행됩니다. 한달을 지내는 입원실도 당연히 무균실입니다. 환자는 면역력이 거의 없는 신생아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건강한 사람의 새로운 혈액의 성분들을 받아 들입니다.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의 성분들이 내몸 속에서 탈 없이 잘 적응되어서 내몸의 것처럼 되면 되는 것입니다. 


생존 확률을 걱정해야 하는 그런 입장에 있다보니, 언니가 많이 무서워했었습니다. 저 같아도 너무 무서워서 많이 울었을 것 같습니다. 수술하러 가기전에 언니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의미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일기장을 하나 골랐습니다. 가격도 비싸고 언니가 필요없다고 사지 말라고 했는데도 바득바득 우겨서 선물했습니다.


매년 똑같은 날에 기록을 할수 있는 칸이 있어서, 작년 11/16은 뭘 했는지, 재작년은 어땠는지 이런식으로 한공간에 적을수 있게 되어 있어서 한눈에 몇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그런 일기장이 있었습니다. 기간도 3년,5년,10년 이런식으로 한권에 이렇게 묶여 있었습니다. 잠깐 생각하다가 가장 기간이 긴 10년 일기장을 선택해서 선물했습니다. 10년짜리 일기장이니까 적어도 이정도는 채울 만큼은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닭살스러워서 '그냥 수술 잘 마치고, 일기장도 잘써.'

이정도의 메시지만 남겼는데, 서로 말은 안 했어도 10년 일기장이라는 그 의미가 언니에게도 느껴졌겠지요?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친 언니를 만나서 산책을 하는데 언니가 이럽니다.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아무일도 안하고 밥먹고 티비만보고 잠만 자는게 그래도 되는지 하는 약간의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토끼처럼 다람쥐처럼 그냥 하루 하루 잘 살아.'

 '그냥 살기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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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익명 2021-11-28  
힘내요
익명 2021-11-28  
행복하기를..
익명 2021-11-25  
예전에 골수기증자가 5-6살 아이에게 기증하겠다해서
몸속세포 다 죽이는 무의과정?으로 만들어놨는데
마음 바껴서 아이가 죽었다던데 ㅠ
다행스럽게도 언니분은 무서운 과정 잘버티고 이겨내셨네요 부디 재발없이 건강하게 하루 하루 가족 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이글도 웃으면서 그랬었지 라고 말할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시길..
익명 2021-11-25  
예전에는 그런 사고가 종종 있었다고 하네요. 요즘은 이 과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주지시키고 해서 거의 기증자들이 과정 중간에 마음을 바꾼다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에 세포를 파괴시켜서 거의 초기화시킨다는 용어를 몰라서 그냥 무(없을무)의 상태라고 했어요.
기증자 분들도 많이 번거롭고 불편한점도 많고 할텐데, 선의로 그렇게 며칠씩 자기 시간 내가면서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나설수 있다는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익명 2021-11-18  
행 복!
익명 2021-11-18  
행 복!22
익명 2021-11-18  
그쳐 딴거 바라지않아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길
익명 2021-11-18  
그럴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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