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도난 따릉이 16대… 학생들 ‘훔치는 법’ 공유도 [이슈 속으로]
1㎞ 내 도난 따릉이 16대… 학생들 ‘훔치는 법’ 공유도 [이슈 속으로]
시민 비양심에 市는 부실 운영 / 거치대는 텅텅… 도처에 방치 / 위치 추적 못하게 고장내고 사용 / 주로 학교·아파트 주변에 방치돼 / 학생들이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 경찰·관리센터 서로 나몰라라 / 서울시 2만5000여대 운영… 2배 늘어 / 인력 부족… 도난 접수돼도 회수 애로 / 단말기 고장땐 위치 찾는 것도 어려워 / 한해 운영비만 200억 적자 / 한대 71만원… 유지·수리비 대당 83만원 / 혈세 낭비… 당국 책임시스템 구축 절실 / “공유재 제대로 사용 시민의식 가져야”
일부는 단말기 LCD가 깨져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거나 ‘통신에 장애가 있었습니다’라는 오류 메시지가 떴다. 도난 따릉이는 도처에 널려 있는데 정작 근처 사거리에 있는 따릉이 대여소에 세워진 따릉이는 2대뿐이었다. 값비싼 액정표시장치(LCD) 단말기를 포함해 대당 가격이 71만원이나 되는 따릉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이용자가 따릉이를 훼손한 후 ‘개인 자전거’처럼 악용하는 행태와 서울시설관리공단의 관리 부실이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난 따릉이 주로 학교 주변에서 발견… 학생들 ‘절도 수법’ 공유하기도
인터넷상에 ‘따릉이 도난’을 검색하면 서울 각지에서 고장 난 따릉이를 발견해 신고했다는 글이 적지 않다.
도대체 누가 따릉이를 고장 내 타고 다니는 걸까. 이날 가장 많은 따릉이가 발견된 B오피스텔의 60대 경비원은 “근처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따릉이를 타고 와 자전거 거치대에 갖다놓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당산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나모(33)씨는 “근처 고등학교 학생이 오후 5시쯤이면 항상 상가 주차장에 따릉이를 댄다”면서 “지금까지 5일 정도 지켜봤는데 매번 따릉이의 일련번호가 달랐으며 전부 도난 접수된 따릉이였다”며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에는 교복 입은 남학생이 따릉이를 주차된 차 사이에 대놓고 상가 안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담겼다.
도난 따릉이의 단말기가 고장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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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씨는 “여기서 열 발짝 떨어진 상가 앞에도 매일 도난 따릉이가 5~6대씩 세워져 있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 따릉이 고장내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절도이고 범죄라는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따릉이 수리 및 교체에도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안다. 쓸데없는 곳에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릉이 파손의 주범을 학생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 학생들 사이에 ‘따릉이 절도 수법’이 전해지고 있다. C고교 2학년 신모(16)양은 친구들이 알려준 방법이라며 몇 가지 절도 수법을 전했다. 그러면서 “다들 너무 쉽게 따릉이를 훔쳐 타고 다니니 ‘아깝게 돈을 왜 내냐’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학생들이 도난 따릉이를) 많이 타고 다닌 지는 한 2~3달쯤 됐다. 일부러 고장 낸 애들도 있지만 원래 상태가 안 좋은 따릉이를 쉽게 거치대에서 빼내 타고 다니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설관리공단 회수 담당자가 도난 신고된 따릉이를 트럭에 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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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해도 회수에 수일 걸려… 관리 당국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
도난 따릉이 확산엔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안일한 대처가 한몫했다는 비판이 크다. 따릉이 관리센터 측에 따르면 도난이나 고장신고가 접수돼도 회수까지 며칠씩 걸린다.
직장인 이모(31)씨는 “3일 전에 도난 신고한 따릉이가 오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며 “다시 신고하니 상담원도 ‘얼마 전에 전화주지 않으셨냐’고 알아보더라. 항의하니 죄송하다면서 ‘긴급’으로 신고를 넣어주겠다고 했는데 이름만 긴급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또 “따릉이를 훔쳐 타는 고등학생을 보고 관리센터에 전화했더니 ‘위험하니 일단 자리를 피하라’고만 하면서 자기들이 지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며 “경찰에선 관리센터에 말하라고 하며 서로 미루기만 하더라”고 답답해했다.
따릉이의 단말기가 고장 나면 대여자의 정보를 알아내기 쉽지 않다. 애초에 대여하지 않고 거치대에서 무력으로 빼낸 따릉이는 단말기에 정보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아 손해배상 청구도 어렵다.
시설관리공단 측은 인력 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트럭을 타고 따릉이를 회수 중이던 한 담당자 D씨는 “지난해만 해도 회수 요청이 들어온 따릉이는 하루 1대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잠깐만 돌아도 15대 분량인 트럭 한 대가 꽉 찬다”며 “혼자 이쪽 지역을 다 돌아야 한다. 인력이 부족하니 들어오는 신고도 다 커버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시설관리공단이 발표한 2019년 따릉이 운영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따릉이 수는 1만1041대에서 1년 만에 2만5000대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배송원은 지난해 143명에서 약 13% 늘어난 162명, 정비원은 지난해와 같은 60명이다.
단말기가 고장 난 도난 따릉이의 위치를 찾는 것도 고역이다. D씨는 “신고가 들어온 지역에 가보면 따릉이가 없어 허탕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단말기에 GPS 장치가 있다고는 하는데 신호가 안 잡혀 찾기가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71만원짜리 자전거에 연간 운영비만 83만원… 올해 적자 200억원 예상
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따릉이 구매가는 71만원이며 이 중 단말기가 43만원을 차지한다. 올해 9월 기준 따릉이 수리비용에만 6억4700만원이 들었다. D씨가 몰고 온 트럭엔 이미 근처에서 회수한 따릉이 12대가 실려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며 아파트단지 앞에 세워져 있던 도난 따릉이 5대 중 3대만 싣고 정비소로 향했다.
서울시의 올해 따릉이 관련 예산은 총 324억8800만원이며 따릉이 추가 구매비용을 제외하고 유지·관리비 등에만 207억원이 책정돼 있다. 2만5000대 운영 기준으로 대당 83만원꼴이다. 상반기 따릉이로 낸 수익은 44억원이며 하반기까지 고려하면 20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성중기 서울시의회 의원은 “따릉이 도난의 발생 원인은 시민의식의 부재다. 공유재를 사유재화하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다만 시민의식이 그렇다면 이에 걸맞은 관리시스템을 갖춰야 했는데 서울시설관리공단 측이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유재 관리주체인 공단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유덕성 서울시설관리공단 공공자전거운영처장은 26일 “올 하반기부터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한 따릉이를 구매하고, 기존 단말기도 무단이용 시 경보음이 울리도록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며 “서울시와 인력 충원 문제도 협의하고 경찰과 협조해 신고제도를 개선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따릉이는 대중교통과 연계해 생활교통수단으로 정착되고, 수익성을 떠나 시민들의 건강 증진, 대기오염 감소 등 이점이 있다”며 “시민들이 따릉이를 내 것처럼 아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사진=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