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16만원, 딱 먹고살면 끝…포기된 평균의 삶
긴축: 점심 한끼와 과일
밥 한끼는 대수롭지 않고 흔한 긴축의 대상이다. 다만 재원씨한테는 ‘불규칙한 식사’가 남긴 질병이 있다. 2016년 ‘크론병'(소화기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소화물 택배 일을 할 때 식사를 자주 걸렀죠. 그 전까지도 계속 비정규직이었으니까, 택배 일 할 때 돈을 가장 잘 벌기는 했는데.” 의사는 병에 걸린 이유로 불규칙한 식사를 들었다. 재원씨의 4월 카드 지출 내용에는 4일과 5일 점심 지출 기록이 없다. 10일엔 2천원짜리 커피 한잔을 사 먹은 기록뿐이다. “수술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부담스러우니까요.” 지난해 기준 외식비 물가는 한해 전보다 7.7% 올랐다. 재원씨 임금은 한해 전보다 2% 올랐다. 그 격차만큼 걱정이 커졌다.
초등학교 청소노동자 김양자(53)씨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 ‘평균적 삶’은 “과일을 마음 편히 사 먹을 수 있는 삶”이다. “우리 가족이 다 과일을 좋아해요. 마트에서 조금씩 사면 더 비싸니까 박스째 사 먹었는데…. 우리만 먹는 건 아니고 여기 선생님들 나눠 드리고 그러는 건데.” 양자씨는 한달 194만7740원을 번다. 지난 4월 그 가운데 11만7천원을 ‘과일 구매’에 쓰고 말았던 배경을 길게 설명했다. 끝내 양자씨도 평균 포기를 선언한다. “아무래도 줄여야 한다면 과일을 가장 먼저 줄여야겠죠.”
포기: 고양이와 제사상
재원씨는 애초 2인 가구였다. 3년 전 함께 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포기한 것의 목록에서 재원씨도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줄였어요.”
현재도 둘이 산다. 어머니를 보내고 2년 뒤 고양이 ‘꾸미’를 만났다. 4월29일 고양이 사료에 5만4천원을 썼다. “처음에 키울 때는 좋은 사료를 줬는데 점점 그러지 못하게 돼요. 괜히 내가 키워서….” 꾸미와의 관계가 무겁다. “더 좋은 것 많이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안쓰러움이 있죠. 내 아이였다고 생각하면 아빠로서 정말로 많이 마음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미래: 빚과 치과
재원씨 한달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 또한 주택담보대출 이자다. 2018년 어머니를 좀더 좋은 곳에 모시려 집 사느라 생긴 빚으로, 변동금리다. 재원씨는 “4년 전에는 한달 이자 49만원을 냈는데, 한때 74만원까지 나오다가 지금은 69만원”이라고 했다. 고금리는 고물가보다 더 큰 부담이다. 민주노총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저임금 노동자 17명의 가계부채 평균은 8225만원이었다.
5천원짜리 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가끔 밥을 걸렀으며, 고양이 사료를 덜 좋은 것으로 바꾸고, 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음식 가짓수를 줄인 재원씨 한달 살이 결과 14만5천원이 남았다. 그의 목표 저축액은 한달 30만원이다. “이가 많이 썩었는데 견적이 230만원 나왔어요. 모아둔 돈이 없어 치료는 그냥 포기했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저축을 30만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예기치 못한 일상의 사건과 겹쳐보자, “딱 먹고사는 만큼은 버는 것” 같았던 재원씨 한달 월급이 돌연 초라해졌다.
http://n.news.naver.com/article/028/0002645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