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문신이었던 이극돈은 "사람들이 풍년이면 음식을 아끼지 않고,
중국인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끼에 먹어치우니 큰 문제다"라고 기술했다.
이극돈 : 사람이 혼자 도대체 쌀 몇섬을 먹어제끼는거냐!!
용재총화에서는 "가난한자는 빚을 내서라도 실컷 먹어대고 군사들은 행군시 군량만 짐의 반을 이상을 차지하며 옷을 버려도 쌀을 챙기고행군중에도 관료들은 수시로 모여 술과 음식들을 먹어치웠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명에 사신으로 간 이정구의 일화 (사진은 이정구의 석상)
이정구가 명 재상의 식사초대를 받아 방문했지만 하필 그 날 재상은 부재중이었다. 재상의 가족들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먹을 술과 고기 안주를 대접했지만 이정구는 실컷 다 먹은 후 식전(밥을 먹기전)이라 이만 집에 돌아가 식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그러자 놀란 재상의 가족들은 떡과 과일같은 음식들을 내왔지만 내온 것을 싹 비운 후 여전히 이정구는 식전이라 돌아가야한다고 했다. 재상의 가족들은 오전에만 4~5번 계속 식사를 대접했지만 이정구는 도저히 안되겠다며 밥을 먹어야겠다고 돌아가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이정구 : 여기는 사람 밥도 안주네 인심 팍팍하구나... 굶었으니 집에가 밥을 지어 먹는수밖에...
명재상의 가족들 : 쟤가 우리 식자재 다 털어먹었음ㅠ
명 재상은 "조선사람은 정확히 밥을 먹지 않으면 굶었다 여기니 내 밥을 대접하란 말을 잊어 사신의 대접을 제대로 못했구나"라며 후회했다고 전해졌다.
수많은 대식가 중 단연 최고로 인정 받는사람이 있는데
바로 홍일동이다. 홍길동 아님.
그는 하루 진관사에 방문하여 한 끼를 대접 받는데 떡 한 그릇, 국수 세 그릇, 밥 세 그릇, 두부국 아홉 그릇을 먹고는 음식이 부족하다며진관사를 내려오는길에 찐 닭 두 마리, 생선국 세 그릇, 회 한 쟁반, 술 마흔잔을 마셨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세조가 혀를 차며 왜 그렇게까지 먹어대냐고 탓했다 전해진다.
세조 : 저게 사람 새끼냐!!! (왕이 그냥 탓하셨다고 눈치껏 적어라)
서거정(徐居正) 1487년(성종 18) 간행된 《필원잡기》(筆苑雜記) 초간본 중 홍일동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