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외과 교수 사직서

경북대 외과 교수 사직서

교수직을 그만두며

제가 전공의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 항상 ‘외과는 지금이 바닥이다.’라고 그랬는데 20년 지났는데도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것 같습니다. ‘필수의료’라고 ‘필수과’라고 누가 명명했는지 그리고 정확한 정의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외과가, 이식혈관외과가 필수과라면, 현재 그 현장에 있는 제.가. 그리고 우.리.가. 도움도 안되고, 쓸데없는 정책이라고, 좋은 정책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나쁜 정책이라고 말하는데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로 간의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다른 여러 곳에서 의대증원 및 필수의료패키지 내용을 반박하는 논거들이 많이 제시되었기에 여기서 그러한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며 정책 세부사항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의료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여론몰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결론과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현재 정부의 자세나 여론을 봐도 쉽게 알 수 있고, 지난 20년 간의 제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대학 본부에서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이 본질과 현실파악에 대한 노력은 없고 해당 정책의 결과도 예측할 생각도 없이, 해당 학과의 의견을 무시한채,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바라보고 정부 정책을 수용하며 이것 저것 요구하는 모습은 할말을 잃게 만들어 뭐라고 언급할 수도 없습니다.

장미빛 미래도 없지만 좋아서 들어온 외과 전공의들이 낙담하고 포기하고 있고,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습니다. 현 의료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 그리고 기성세대 의사들인 우리가 욕먹어야 할 것을 의사생활한지 얼마 되지않은 그리고 병원내에서 누구보다 고생하고 있는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는 이런 답답한 상황에 저는 제위치에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그리고 후대 의대생에게 외과 전공의 하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겠습니다. 전공의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습니다. 정부의 겁박에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고, 뒤에 숨어서 ‘반대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어떻게든 잘 해결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저는 외과 교수직을 그만 두겠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이미 오래전 번아웃도 되었고, 매일매일 그만하고싶다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도와주는건 없고 더 힘만 빠지게 하네요. 전공의도 없고 학생도 없고, 오히려 교육대상이 없어 더 편해진건가요? 제겐 오히려 고마운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바쁘게 앞만보고 살아온 제 인생도 한번 뒤돌아보고, 잊고지내온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소홀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반적인 삶을 살아보려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4년 03월 04일
윤우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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