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가 죽을 때까지 혈뇨지리며 일한 이유

황희가 죽을 때까지 혈뇨지리며 일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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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1 dbsgml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라잖아
저대사만봐도 황희라는 인간은
능력은 뛰어날지몰라도 인품과 비리가
비례한 인물임이 알수있음
어진임금이라 신하의
 자식의 못난점만 들먹였고
본인은 추궁하지않고 말을아낀점
가서 일해라는말이 함축적인 의미가 많은말인듯


9 Comments
여름바람  
ㅎㅎ
페인  
자식들 잘못둔 죄..

럭키 123 포인트!

ISFP  
동궁전에 취직한 아들은 얼자였지요. 황중생이라고... 약 4년 여 일하면서 빼돌린 게 많았고, 그 과정에 적자였던 세 아들 중 둘째가 가담을 했던 거였죠. 그리고 황희는 적자를 구하기 위해 얼자인 중생에게,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 라 하여
중생은 성을 조씨로 바꾸었으나, 결국 참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줄리  
비록 황희가 개인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가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황희는 도덕군자가 아닌 현실 정치인이었으며, 누가 뭐래도 조선조 최장수 임명직 재상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태종과 세종시대를 거치면서 세자가 양녕대군에서 충녕대군으로 바뀌는 등의 정치적인 격랑 속에서도 무려 20여 년을 재상직에 머물렀고, 세종 연간의 태평세월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는 조선왕조를 통털어 전무후무하며, 독재가 아닌 한 있을 수 없는 기록이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황희는 정치 일선에서 강직한 성품으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도 때로는 관용의 리더십을 베풀어 조선 왕조의 조기안정화에 기여했다. 현실 정치란 결코 원칙과 소신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반대파를 적절히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황희는 그런 강약 조절을 매우 잘 한 인물이었다.
또한 황희에게는 맹사성이라는 훌륭한 정치적 파트너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정치적 견해를 가지면서도 서로 다른 성품을 지녔는데, 황희가 학자적인 인물로서 분명하고 강직함을 추구했다면, 맹사성은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정치 일선에서 어질고 부드럽고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성품과 기질을 바탕으로 황희는 주로 이조, 병조 등 정확성과 과단성이 필요한 관서에서 인사, 행정, 군사의 업무를 맡고, 맹사성은 주로 예조나 공조 등 유연성이 요구되는 업무를 맡으며 정치적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냥그렇게  
[@줄리]
노란싹은 다 잘라버린 킬방원덕?
dbsgml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라잖아
저대사만봐도 황희라는 인간은
능력은 뛰어날지몰라도 인품과 비리가
비례한 인물임이 알수있음
어진임금이라 신하의
 자식의 못난점만 들먹였고
본인은 추궁하지않고 말을아낀점
가서 일해라는말이 함축적인 의미가 많은말인듯
6시내고양이  
헐 자식농사 망쳤었네. 아들 죄를 아버지가 갚았구나
달콤한브라우니  
부모라도 책임을 져야지..
모나리자  
일해라 노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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