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는 특수한 직책을 부여받은 수감자가 있었다.
직책의 이름은 카포(Kapo, Funktionshäftling).
독일군을 대신해 같은 유대인 수감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던 특수 수감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나치 치하에서 동족인 유대인을 핍박한 부역자들이라는 것.
형식적으로는 다른 수감자들과 동일한 신분이었으나, 이들은 나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대가로 통상의 수감자들은 얻지 못하는 많은 특권을 부여 받았다.
가축처럼 집단 생활을 하는 죄수들과 달리
카포는 전기가 들어오는 개인실에서 안락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고
고된 육체 노동 대신 다른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굉장히 편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심지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같은 죄수들을 상대로 가학 행위를 할 수도 있는 권한까지 지녔다.
(카포들만 찰 수 있었던 완장. 유대인들의 상징인 육각성 문양이 인상적이다.)
심지어 롤빵이나 계란, 소시지, 커피처럼 수감자들은 꿈도 못 꾸던 양질의 음식을 늘 배불리 먹을 수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수감자들 사이에서 카포는 선망과 질투를 동시에 받는 직책이었으나, 달리 말하면 나치의 눈을 속이고 수감자들을 선동해 폭동을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치는 일부러 강간범, 살인자처럼 잔인하고 악독한 이들만을 골라 특권을 보장하면서 결코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도록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듯, 모든 카포가 잔인한 악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소수의 카포들은 나치의 감시를 피해 자신이 관리하는 수감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틈틈이 격려하거나
자신의 몫으로 나온 식량과 약품을 빼돌려 굶주리고 병든 수감자들을 비밀리에 돕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착한' 카포들은, 정말 일부의 경우를 빼면 대다수 이를 들켜 카포 직책을 박탈 당하고 일반 수감자로 강등을 당했다.
이들이 어째서 본인들의 선행을 발각당했을까?
우습게도 그렇게 잘 대해주고 보호했던 수감자들이 몰래 그들을 밀고한 것이다.
수용소가 보장하는 카포의 특권을 탐낸 몇몇 수감자들이 그들을 떨어뜨리고 자신이 카포가 되겠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
그렇기에 레지스탕스나 정치범처럼 사상적으로 단결된 이들을 모아놓은 수용소를 제외하면
수감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던 카포들은 남김없이 끌려 나가거나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빈 자리를 악독한 범죄자 카포가 채우면서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알량한 탐욕을 버리지 못해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좆간의 본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다시 보는 옛 성현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