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유명하고 인기 많은 것과, 남의 선택지와, 알고리즘의 추천 벗어나 보기…서점 베스트셀러 피하고, 지도앱 끄고 내 멋대로 경로 만들고, 아무 밥집이나 들어가고…묘한 해방감, 처음 가본 길이 만들어준 새로운 '경험 지도'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서 가장 인기가 없다던, 시나몬향이 나던 커피. 통상 주문하던 건 사람들이 주로 많이 먹는 것. 그와 반대로 주문해봤다.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수정과 맛이 났다./사진=냄새부터 맡아보았던 의심 많은 남형도 기자
회사 근처 단골 스타벅스 매장에 갔다. 메뉴판을 잠시 바라보았다. 익숙한 커피들이 보였다. 평소 늘 마시던 것들.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단정한 차림을 한 직원 앞에 섰다. 그가 내게 물었다.
"주문하시겠어요?"(직원)
"네, 혹시…여기서 제일 인기 없는 메뉴가 뭘까요?"(나)
직원은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했다. 이내 능숙한 추천이 이어졌다.
"음, 저희 매장에서는 이 음료가 가장 안 팔리고 있어요."(직원)
"아, 그걸로 주문할게요!"(나)
메뉴 이름은 비밀(음료 개발한 분이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설명하자면, 에스프레소와 흑당 시럽과 시나몬의 다소 낯선 조합이었다. "시나몬 괜찮으시겠어요?" 주문할 때 들린 직원 말이 조금은 불안했지만. 별수 없다. 이미 결제는 끝났다.
그 스타벅스 커피가 어땠냐면, 솔직히 첫 모금은 살짝 의아한 맛이었다. 똘이에게 낯선 단어를 들려주면 갸우뚱하듯, 내 고개도 기울어졌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사진=똘이가 가장 좋아하는 형아, 남형도 기자기다린 음료가 나왔다. 흑설탕과 우유와 커피가 적절히 섞인 오묘한 색깔. 한 입 먹어봤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기울어졌다. 반려견 똘이에게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모르는 단어를 말하면, 갸우뚱하는데 그와 비슷했다. 먹는 방법이 잘못됐나 싶어 컵을 들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섞었다. 덜그럭덜그럭, 사각 얼음이 유리컵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어우러지고 나니 맛이 썩 괜찮아졌다. 뭐랄까, 수정과에 커피 섞은 낯선 맛인데 중독성 있었다. 음료는 금세 사라지고 바닥엔 얼음만 남았다.
모처럼 여행이니 실패하기 싫은 마음을 잘 안다. 존중한다. 그래도 지도를 넓혀봤으면 싶다. 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드므로./사진=남형도 기자파리에 처음 갔을 때였다. 그곳을 잘 모르니까 검색했다. 비싼 돈 들인 여행 아닌가. 두려웠다.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가 혹시나, 맛 없을까봐. 검색했다. 맛집이라며 가게들이 나왔다. 그곳에 갔다. 잠시 뒤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한국인이었다. 커플도 왔다. 한국인이었다. 테이블 몇 개가 한국인들로 꽉 찼다. 장소가 몽마르뜨 근처였나, 하여튼 기억도 안 난다. 맛도 가물가물하다.
거기는 대체 누구의 '선택지'였을까.
앞에서 했던 작은 모험. 실은 그리 대단한 교훈이 담긴 메시지는 없다. 엄청 즐겁기만 하거나 오롯이 재밌는 것도 아녔다. 외려 약간의 불안이 늘 동반됐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았다.
그건 오롯이 '내 선택'이었으므로.
처음 알게 됐다. 선택지가 남들이 다 쫓는 것에만 있지 않단 것을. 나만의 방법도 괜찮단 걸. 차로 100번 넘게 건너다녔던 양화대교에서, 콘크리트 사이로 가만히 삐죽 솟은 들풀을 처음 발견하며 '그래도 좋은 거였네'하며 실실 웃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다 꺼봤다. 깨끗한 하얀 화면. 어쩐지 맘이 평온해졌다./사진=남형도를 먼저 검색해본 남형도 기자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번엔 유튜브 채널의 '알고리즘'을 다 꺼버렸다. 검색창 하나만 덜렁 띄워진 화면. 난 뭘 찾아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해졌다.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알아서 주어졌던, 왜 보는지 모를 영상들에.
평소 찾고 싶었던 게 뭘지 생각한다. 고민한다. 답이 금방 나오질 않는다. '강아지'를 입력했다. 조회수가 높은 것 위주로 나온다. 올라온 날짜 순으로 나열했다. 30명이 본 것도 나오고, 55명이 본 것도 떴다. 빠짐없이 나왔으면 싶다.
조회수가 얼마 안 돼, 알고리즘엔 절대 걸릴리 없었던 '강아지 그리기' 영상. 너무 귀여워서 추천 눌렀다. 알고리즘을 벗어나면 취향에 맞는 무언가 더 많이 보일 거라고./사진=이에 따라 똘이를 그릴 예정인 남형도 기자그리고 내가, 선택해서 골라 보고 싶다고.
"내게 필요한 것은 남의 은하수가 아니었다.
나만의 견고한 별 하나였다."
- 김민철 작가, 모든 요일의 여행 中
양화대교 콘크리트 틈으로 쏙 자라 있던 들풀. 평온했던 여름 풍경. 누군가의 시선이 다 닿는 것만이 좋은 건 아닐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에필로그(epilogue).
실은 괜찮을까 싶어 여전히 좀 두렵다. 그래서 어느 여행의 기억을 하나 더 꺼내본다.
어느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맛있다며 찾아간 유명 카페는 휴일이라 닫혀 있었다. 검색하려는데 인터넷이 잘 안 터졌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아내와 난 순간 정지됐다. 우린 이미 길을 찾느라, 또 무더위에 지쳐 있었다.
별 수 없이 그 옆의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안경을 쓴 바리스타가 주문을 받았다. 라떼를 주문해서 마셨다.
검색해도 결과값이 하나도 나오지 않던, 기대 하나 안 했던 그 가게.
그런데 거기가 스페인에서 먹은 커피 중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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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903407?sid=102
너무너무 좋은 기사.... 전문 다 보길 추천..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서 가장 인기가 없다던, 시나몬향이 나던 커피. 통상 주문하던 건 사람들이 주로 많이 먹는 것. 그와 반대로 주문해봤다.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수정과 맛이 났다./사진=냄새부터 맡아보았던 의심 많은 남형도 기자
회사 근처 단골 스타벅스 매장에 갔다. 메뉴판을 잠시 바라보았다. 익숙한 커피들이 보였다. 평소 늘 마시던 것들.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단정한 차림을 한 직원 앞에 섰다. 그가 내게 물었다.
"주문하시겠어요?"(직원)
"네, 혹시…여기서 제일 인기 없는 메뉴가 뭘까요?"(나)
직원은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했다. 이내 능숙한 추천이 이어졌다.
"음, 저희 매장에서는 이 음료가 가장 안 팔리고 있어요."(직원)
"아, 그걸로 주문할게요!"(나)
메뉴 이름은 비밀(음료 개발한 분이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설명하자면, 에스프레소와 흑당 시럽과 시나몬의 다소 낯선 조합이었다. "시나몬 괜찮으시겠어요?" 주문할 때 들린 직원 말이 조금은 불안했지만. 별수 없다. 이미 결제는 끝났다.
그 스타벅스 커피가 어땠냐면, 솔직히 첫 모금은 살짝 의아한 맛이었다. 똘이에게 낯선 단어를 들려주면 갸우뚱하듯, 내 고개도 기울어졌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사진=똘이가 가장 좋아하는 형아, 남형도 기자기다린 음료가 나왔다. 흑설탕과 우유와 커피가 적절히 섞인 오묘한 색깔. 한 입 먹어봤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기울어졌다. 반려견 똘이에게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모르는 단어를 말하면, 갸우뚱하는데 그와 비슷했다. 먹는 방법이 잘못됐나 싶어 컵을 들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섞었다. 덜그럭덜그럭, 사각 얼음이 유리컵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어우러지고 나니 맛이 썩 괜찮아졌다. 뭐랄까, 수정과에 커피 섞은 낯선 맛인데 중독성 있었다. 음료는 금세 사라지고 바닥엔 얼음만 남았다.
모처럼 여행이니 실패하기 싫은 마음을 잘 안다. 존중한다. 그래도 지도를 넓혀봤으면 싶다. 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드므로./사진=남형도 기자파리에 처음 갔을 때였다. 그곳을 잘 모르니까 검색했다. 비싼 돈 들인 여행 아닌가. 두려웠다.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가 혹시나, 맛 없을까봐. 검색했다. 맛집이라며 가게들이 나왔다. 그곳에 갔다. 잠시 뒤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한국인이었다. 커플도 왔다. 한국인이었다. 테이블 몇 개가 한국인들로 꽉 찼다. 장소가 몽마르뜨 근처였나, 하여튼 기억도 안 난다. 맛도 가물가물하다.
거기는 대체 누구의 '선택지'였을까.
앞에서 했던 작은 모험. 실은 그리 대단한 교훈이 담긴 메시지는 없다. 엄청 즐겁기만 하거나 오롯이 재밌는 것도 아녔다. 외려 약간의 불안이 늘 동반됐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았다.
그건 오롯이 '내 선택'이었으므로.
처음 알게 됐다. 선택지가 남들이 다 쫓는 것에만 있지 않단 것을. 나만의 방법도 괜찮단 걸. 차로 100번 넘게 건너다녔던 양화대교에서, 콘크리트 사이로 가만히 삐죽 솟은 들풀을 처음 발견하며 '그래도 좋은 거였네'하며 실실 웃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다 꺼봤다. 깨끗한 하얀 화면. 어쩐지 맘이 평온해졌다./사진=남형도를 먼저 검색해본 남형도 기자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번엔 유튜브 채널의 '알고리즘'을 다 꺼버렸다. 검색창 하나만 덜렁 띄워진 화면. 난 뭘 찾아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해졌다.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알아서 주어졌던, 왜 보는지 모를 영상들에.
평소 찾고 싶었던 게 뭘지 생각한다. 고민한다. 답이 금방 나오질 않는다. '강아지'를 입력했다. 조회수가 높은 것 위주로 나온다. 올라온 날짜 순으로 나열했다. 30명이 본 것도 나오고, 55명이 본 것도 떴다. 빠짐없이 나왔으면 싶다.
조회수가 얼마 안 돼, 알고리즘엔 절대 걸릴리 없었던 '강아지 그리기' 영상. 너무 귀여워서 추천 눌렀다. 알고리즘을 벗어나면 취향에 맞는 무언가 더 많이 보일 거라고./사진=이에 따라 똘이를 그릴 예정인 남형도 기자그리고 내가, 선택해서 골라 보고 싶다고.
"내게 필요한 것은 남의 은하수가 아니었다.
나만의 견고한 별 하나였다."
- 김민철 작가, 모든 요일의 여행 中
양화대교 콘크리트 틈으로 쏙 자라 있던 들풀. 평온했던 여름 풍경. 누군가의 시선이 다 닿는 것만이 좋은 건 아닐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에필로그(epilogue).
실은 괜찮을까 싶어 여전히 좀 두렵다. 그래서 어느 여행의 기억을 하나 더 꺼내본다.
어느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맛있다며 찾아간 유명 카페는 휴일이라 닫혀 있었다. 검색하려는데 인터넷이 잘 안 터졌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아내와 난 순간 정지됐다. 우린 이미 길을 찾느라, 또 무더위에 지쳐 있었다.
별 수 없이 그 옆의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안경을 쓴 바리스타가 주문을 받았다. 라떼를 주문해서 마셨다.
검색해도 결과값이 하나도 나오지 않던, 기대 하나 안 했던 그 가게.
그런데 거기가 스페인에서 먹은 커피 중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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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903407?sid=102
너무너무 좋은 기사.... 전문 다 보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