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후 명나라의 조선 수탈

임진왜란 후 명나라의 조선 수탈

(만력제)

 

"허허 전쟁도 하고 궁궐도 새로 지으니까 돈이 없구나"

 

 



....

"바쳐야겠지?"

 

 

만력제는 국고가 비었다며 

1. 전국의 은광을 개발하고

2. 상세를 수취할 것을 명한다.

 

이를 "광세의 화"라고 하는데..

 

 



세금 수취 담당(광세사)을 환관으로 임명하게 된다.

 

안 그래도 환관의 악명이 높았던 바, 광세의 화를 계기로

환관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당연히 이 세금징수는 요동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요동세금징수원 고회라고 한다.

 

...

"바쳐야겠지?"

 

 



와...

명나라도 정상은 아니네..

어떻게 저러냐?

 

이는 조선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좀스러운 짓이었다.

 

 



??

 

 



?

왜요

 

 



"바쳐야겠지?"

 

 



"이런 씨발!!"

 

당시 명 조정에서

"조선이 은혜를 갚아야 한다."

"조선은 엄연히 명의 일부"

 

라는 의견이 대세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임진왜란 시기는 조선의 자주성이 가장 훼손된 때였고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은 명나라의 수탈을 막아낼 힘도 논리도 전혀 없었다.

 

 


 

요동광세사 고회는 조선에 토산물을 바칠 것을 수천 건 요구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광산은 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이 대금을 치러줄 것을 부탁하면 

감히 상국이랑 장사질을 하자는 거냐면서 콧방귀를 뀌어댔다.

 

 



게다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병사와 장수들이

고회의 수하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조선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어

그 폐해는 훨씬 심각했다.

 

 



게다가 만력제는 대놓고 광세사들을 감싸주고 있었으며

 

조선이 할 수 있는 것은 

제발 수탈을 막아달라고 명나라의 고관에게 로비하는 것뿐이었다.

 

 

 

사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회가 상방에 어공할 물품이라는 핑계로 차관 장겸과 이자태 등을 보내 본국 토산물을 요구한 것이 거의 수천 여 건이다. 본국이 거절 하지 못하고 팔도에 分定하여 그 청에 응하게 했는데 문이 한 번 열리자 末流의 폐해를 막기 어려워 만신창이가 된 民力이 고갈되었다.

『선조실록』 券147, 선조35년 윤2월 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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