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만약 1주일 일찍 항복했다면 한미일 모두의 승리인 이유
1920년 당시 일본제국 지도
"일본의 영토를 본토로만 국한한다면 일본의 인구가 3천만명이었을 때로 되돌아가라는 것. 지금은 7천만명이니 반드시 한국, 타이완 (臺灣) 등을 소유해야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
-오카무라 야스지, 일본 지나 파견군 사령관, 1945년 8월 15일 도쿄에 보낸 긴급전보에서-
"한국과 타이완은 일본이 합병한 후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두 지역은 일본의 식량공급지로 반드시 필요하다"
-스위스 주재 일본 대사, 1945년 6월 연합국에 내세운 강화 조건-
일본이 끝까지 항복 거부한 이유는 천황제 유지보다 "만주사변~태평양 전쟁으로 얻은 땅은 포기할텐데, 왜 그 이전에 합법적으로 얻은 조선, 타이완까지 버려야 하냐?" 였음. 만약 일본이 욕심부리지 말고 포츠담 선언 직후 빨리 항복했다면?
"여기서 우리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실에 착안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이 평화공작에 매달려 항복을 늦췄기에 자국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한때 기대했던 대로 일본이 적어도 8~9일 전에만 항복했어도 소련군의 한반도 진입을 막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됐으면 한반도의 분할은 회피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일제는 패망하면서도 우리 민족에게 또 한 차례의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한국의 경우- 소련군의 참전(8월 9일)이 없으니, 한국은 분단과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음. 동시에 미국 단독 점령지가 됨. 트루먼은 일찍이 1941년 태평양 전쟁 이전에 상원의원 시절 "독일과 소련이 전쟁한다면, 독일이 이기고 있으면 러시아를, 러시아가 이기고 있으면 독일을 도와서 가능한 그들이 피를 최대한 많이 흘리게 하는 것이 미국의 이득"이라 주장함.
사실 둘 중 누가 이겨도 미국의 적이 되는건 100%인데다 당시 도버해협도 건너지 못한 히틀러의 독일이 대서양을 건너는건 완전히 불가능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순수 미국의 이익만으론 이게 맞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트루먼은 일찍이 소련을 경계했던 만큼, 소련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얄타회담을 먼저 어긴건 소련이다. 우리가 한반도랑 일본땅 차지하는건 당연한거다." 이렇게 주장했을테고, 당시만 해도 스탈린과 소련은 독소전쟁의 피해+원자폭탄 개발 전이라 미국한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음. 게다가 얄타회담에 따르면 소련이 일본과 전쟁참전 약속했는데 결국 약속을 어기게 된 것이니 국제법적으로도 할 말이 없음.
6.25랑 한국전쟁 없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엄청나게 역사가 바꼈을듯.
일본의 경우- 원자폭탄 맞을 일이 없고 거기다 소련의 개입이 없었으므로 얄타에서 소련 참전 시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가 빼앗긴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음. 위 지도에 보듯이 사할린 남쪽이랑 쿠릴열도는 원래 일본 땅인데 소련 참전하면 주기로 얄타회담 때 미국이 약속함. 그런데 소련 참전 없으니 미국은 당연히 "약속 안지킨 너네한테 왜 줘야 함?" 이럴게 뻔함.
결국 원자폭탄 안맞고 쿠릴열도랑 사할린 지키니 일본 입장에선 쿠릴열도 분쟁도 없고 비교적 이득볼게 뻔함
미국의 경우- 한반도와 일본에 주둔할 미군이 소련의 태평양 함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완전히 통제할 수도 있었음. 저 위의 지도에서 보면 만약 일본이 그대로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 전체를 가지고 있으면 소련의 태평양함대는 연해주 인근 바다를 통해 사할린 북부를 통해 태평양으로 나가야 하는데 일본 해자대와 미 해군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니 큰 타격을 입게 됨. 여기다가 나진항과 청진에 주둔할 미 해군과 한국 해군에 의해 소련 태평양 함대는 그냥 나가지도 못하고 한러국경 쪽의 미군도 신경써야 함.
중국의 경우-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이기든, 공산당이 이기든, 결국 중국은 얻고 싶었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얻을 수 없음.
국공내전 초반 공산당이 한참 밀릴 때 북한 땅으로 후퇴해서 숨돌릴 틈이 있던 거 고려하면 미군이 주둔한 한반도 북부에 들어갈 수도 없는 공산당이 100%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