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보는앞조선인학살장면,14m 두루마리그림에생생
간토대지진조선인학살그림...100년만에서공개 간토학살묘사한화가그림공개...'조선인이방화''조
선인폭동경계' 당시정부•언론이유언비어유포..."B정부,조사책임
있는조치해야"
{생략}
26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 민간 박물관인 이곳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가 열렸다. 간토(關東)대지진 100년을 맞아 당시 조선인 학살 장면을 담은 두루마리 그림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길이 14m, 폭 36cm의 긴 그림에는 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권을 강타해 10만 명 이상이 숨진 간토대지진 참상이 영화 필름처럼 담겨 있었다.
1926년 기코쿠(淇谷)라는 이름의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평온했던 마을이 지진으로 혼란에 빠지는 모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생히 묘사돼 있다.
집이 부서지고 화재가 일어난 장면이 지나가자 누런 일본군 군복을 입은 이들이 일반인과 함께 칼, 죽창을 들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붉은 피를 흘리는 장면도 선명했다. 잔인한 학살 장면이 끝나는 그림 후반부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인 시체들이 불타는 모습이 담겼다. 관람객 40여 명은 펼쳐지는 그림 속 장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고려박물관장(전 센슈대 역사학 교수)은 인터넷 경매로 2년 전 이 그림을 입수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조선인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군인, 경찰, 일반 시민이 공공연히 보는 앞에서 조선인을 죽이는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했다. 지진 대비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라를 잃고 살던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손에 무고하게 학살당한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려면 간토대지진의 역사적 진실을 일본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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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news.naver.com/mnews/article/comment/020/0003517203?sid=100
선인폭동경계' 당시정부•언론이유언비어유포..."B정부,조사책임
있는조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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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 민간 박물관인 이곳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가 열렸다. 간토(關東)대지진 100년을 맞아 당시 조선인 학살 장면을 담은 두루마리 그림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길이 14m, 폭 36cm의 긴 그림에는 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권을 강타해 10만 명 이상이 숨진 간토대지진 참상이 영화 필름처럼 담겨 있었다.
1926년 기코쿠(淇谷)라는 이름의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평온했던 마을이 지진으로 혼란에 빠지는 모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생히 묘사돼 있다.
집이 부서지고 화재가 일어난 장면이 지나가자 누런 일본군 군복을 입은 이들이 일반인과 함께 칼, 죽창을 들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붉은 피를 흘리는 장면도 선명했다. 잔인한 학살 장면이 끝나는 그림 후반부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인 시체들이 불타는 모습이 담겼다. 관람객 40여 명은 펼쳐지는 그림 속 장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고려박물관장(전 센슈대 역사학 교수)은 인터넷 경매로 2년 전 이 그림을 입수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조선인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군인, 경찰, 일반 시민이 공공연히 보는 앞에서 조선인을 죽이는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했다. 지진 대비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라를 잃고 살던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손에 무고하게 학살당한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려면 간토대지진의 역사적 진실을 일본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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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news.naver.com/mnews/article/comment/020/0003517203?sid=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