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해인은 정말 정약용의 직계 후손이 아닌가?
배우 정해인은 정약용의 6대 직계후손으로 알려져있으며, 그 덕에 남양주 정약용 유적지에 있는 다산기념관의 안내 나레이션을 맡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정해인은 정말 정약용의 직계 6대손이 아닐까? 한번 파헤쳐보자!
우선 정약용의 성씨부터 조금 알아보자! (스킵해도 된다)
정약용의 성씨인 나주 정씨는 압해(현재 신안에 위치) 정씨에서 나온 분파 중의 하나이다. 분파의 이유는 압해 정씨의 시조이자 중국에서 넘어온 허구의 인물인 ‘정덕성’이라는 인물을 시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새로운 성씨를 만들기 위해 고려시대 인물인 압해정씨 16대손 ‘정윤종’이라는 인물을 새로운 시조로 삼아 새로 나주 정씨를 만들게 된다(당시 실제 양반들 사이에서 중국을 높게 여기는 문화 때문에 가문의 시조를 허구의 중국인으로 삼는 일이 유행함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 중국에서 넘어온 성씨가 많은것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며 나주정씨 탄생).
정약용은 나주 정씨 중에서도 월헌공파(대사헌공파)에 속하는데 이는 조선 단종때 태어나서 사헌부의 대사헌까지 지낸 ‘정수강’이라는 인물의 호인 ‘월헌’ 또는 직책인 ‘대사헌’을 따와서 월헌공파 또는 대사헌공파로 분파한 가문이다.
그럼 실제 정약용과 정해인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본론)
(위는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유의 자손들을 적은 종이 족보이다. 맨위 오른쪽이 족보상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
정약용의 직계 족보에서 정해인을 찾을수 없다고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족보는 종이 족보의 한계로 직계 후손들을 양 페이지에 다 담아내지 못한것일 뿐이다.
그럼 전자 족보를 한번 살펴보자(아래는 압해정씨, 나주 정씨 대종회에서 족보를 온라인에 옮긴 전자 족보이다).
일단 나주 정씨 월헌공파(대사헌공파) 23세손에서 정약용을 찾을수 있다. 그의 부모 형제 자식 모두 역사와 일치한다.
정약용에게는 족보상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중 차남의 이름은 학유(24세손)이며 학유에게는 또 대무, 대번, 대초라는 3명의 아들이 있다(이들은 25세손).
이들 중 막내인 대초(25세손)에게는 보는것과 같이 4명의 아들들이(26세손) 있는데. 마지막으로 4남 중 막내인 춘섭(26세손)의 족보를 다시 살펴보면.
29세손인 정해인과 28세손인 그의 아버지를 찾을수 있다.
요약
정해인은 장자 장손은 아니지만 실제 정약용의 6대 직계 자손이 맞다.
실제 정약용은 정해인의 내조할아버지, 정약용의 차남인 정학유는 정해인의 현조할아버지이다. (고조할아버지 다음 현조)
정학유와 정해인 간의 족보상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점, 정약용이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유명인임을 생각했을때 족보를 샀을 확률도 사실상 없다고 사견된다.
정해인 양가 부모님도 모두 의사이신 엘리트 가정.
+정약용과 정해인과 직계도를 요약 (숫자뒤 세손)
23 정약용
24 정약용의 2남인 학유
25 정학유의 3남인 대초
26 정대초의 4남 춘섭
27 정춘섭의 2남 규직
28 정규직의 장남 상진
29 정상진 장남 정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