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한 그 돼지…천만영화 ‘파묘’ 동물학대 논란
“동물을 제물이나 소품이 아닌 생명체로 표현하고 촬영할 수 없었는지, ‘파묘’ 감독, 제작사에 묻고 싶습니다.”(동물보호단체 ‘카라’)
올해 첫 ‘천만 영화’로 기록된 영화 ‘파묘’가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최대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동물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이하 동모본) 관계자는 1일 아시아경제에 “‘파묘’에 대한 의견이 한 달 만에 8건이나 등록됐다”며 “극 중 일부 장면에서 돼지, 닭, 은어, 개 등 다양한 동물이 위험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많은 동물이 모형인지 CG(컴퓨터그래픽)인지, 아니면 실제 동물을 사용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꼭 동물을 등장시켜야 했는지, 동물을 제물이나 소품이 아닌 생명체로 표현하고 대할 순 없었는지, 동물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 감독·제작사에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라 동모본은 지난달 12일 제작사 쇼박스에 7가지 질의를 담은 공문을 메일과 팩스로 보냈다. 지적한 장면은 ▲대살굿에 동원된 돼지 사체 5구를 계속해서 난자하는 장면 ▲축사에서 돼지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는 장면 ▲잔인하게 공격당해 죽은 돼지들 ▲살아서 펄떡거리는 은어를 땅에 미끼로 놔두는 장면 ▲절에서 1m 목줄을 찬 개(백구) 장면 ▲닭을 칼로 위협하는 장면 등이다.
특히 무당 화림(김고은 분)이 대살굿을 펼치며 새끼 돼지 5마리를 칼로 찌르는 장면이 문제로 지적됐다. 조상신에게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타살굿'으로도 불린다. 해당 장면에서 무당은 생후 6개월 남짓한 새끼 돼지들을 난도질한다.
동모본은 ‘파묘’ 제작사 쇼박스에서 메일을 읽은 걸로 확인돼 재차 메일을 보내 답변을 요구했지만, 1일 오후까지 답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모본 관계자는 “그간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도,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하고 분주히 방영 중인 드라마도 제작사에서 빠르게 답변했다. 개봉해 상영 중인 영화라서 시간 여유를 드렸는데도 답변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아시아경제가 관련 취재를 시작하자 쇼박스 관계자는 동모본에 메일을 보내 “문의 내용을 확인 후 답변서를 보내겠다”고 답장했다. 쇼박스 관계자는 본지에 “그동안 내부 사정으로 동모본의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해당 내용을 제작팀에 확인 과정을 거쳐 답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동모본은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에 동원된 자라와 영화 ‘마루이 비디오’에 동원된 닭의 문제를 지적해 유의미한 답변을 들은 바 있다. 동모본이 제작사 ‘모호필름’에 극 중 자라 촬영에 관해 문의한 결과, 동원된 자라 중 세 마리가 촬영 후 죽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촬영 현장에는 수의사나 전문가가 아닌 농장주를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예산 영화 ‘마루이 비디오’는 살아있는 목을 잡아 들고 있는 장면이 문제로 지적됐다. 배우들이 닭의 목 근처를 칼로 찔러 피를 빼는 장면에 영화 제작사는 “예산이 없어서 닭의 사체를 가져다 썼다며 다음에는 가이드라인을 고려하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파묘’에 동원된 돼지, 은어 등도 CG나 더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태화 은어교실’은 블로그에 살아있는 은어를 ‘파묘’ 촬영장에 가져다줬다고 홍보하고 있다. 김태화 프로는 “장재현 감독이 CG 사용을 극도로 꺼렸다”며 “살아있는 은어가 필요해 산 정상까지 산소통이 실린 차량으로 이동했다”고 적었다. 업체는 은어를 관리하고 납품한 주체로 ‘파묘’의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된다.
카라 권나미 활동가는 “‘파묘’는 자연에 대한 가치가 인상적인 영화인데, 촬영에 동물이 소품으로 동원됐다면 그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극 중 ‘무당’ 역으로 돼지를 난도질하는 장면을 촬영한 배우 김고은은 실제로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고, 최근 개봉한 동물 영화 ‘도그데이즈’에도 출연하는 등 동물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기에 더 아쉽다. ‘카라’의 전신인 ‘아름품’ 창립 멤버로, 카라의 상임이사(2014~2021년)를 역임한 임순례 감독은 “촬영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동물 학대에 대해 할리우드처럼 배우들이 촬영거부로 맞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 ‘검은사제들’(2015) 돼지 장면에 이어 ‘사바하’(2019)에서 불법 개 농장에서 촬영한 듯한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됐다. 수십마리 개들이 좁은 케이지에 갇혀 울부짖는 장면이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