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조커'의 신들린 총구에, 극장 지키기 나선 美경찰

영화 속 '조커'의 신들린 총구에, 극장 지키기 나선 美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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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조커'의 신들린 총구에, 극장 지키기 나선 美경찰


[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반사회 영화가 총기난사 원인일까 

중앙일보 
영화 '조커'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압도적이고 대담하며 처연하다. 코믹스 영화 사상 역대급 스핀오프(spinoff)의 탄생이다. 지난 2일 국내 개봉해 4일까지 사흘간 127만 관객을 빨아들인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 얘기다. 지난 9월 8일 폐막한 제7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탔을 때 예견되긴 했지만, 실제 뚜껑을 열자 기대 이상이라는 평이 쏟아지고 있다. 주인공 아서 플렉을 연기하기 위해 23kg을 감량한 호아킨 피닉스는 이미 내년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으로 유력 거론된다.

영화는 DC 코믹스 기반 캐릭터 ‘배트맨’의 프리퀄(기존 작품 속 이야기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속편)에 해당한다. 아서가 훗날 배트맨이 될 소년 브루스 웨인을 대문 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장면도 나온다. 소년의 입술을 광대 조커처럼 ‘웃는 표정’으로 일그러뜨리는 아서의 손놀림이 섬뜩한 것은 ‘배트맨: 다크 나이트’(2008)의 유명한 대사때문일 테다. “왜 그렇게 심각해(Why so serious)?”

한국이 먼저 관객몰이를 시작한 가운데 미국에선 4일(현지시간) 역대 10월 개봉작 중 최다 규모인 4300여개 상영관에 걸렸다. 한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LA에 이어 뉴욕 경찰이 극장 일대 순찰과 경계근무를 강화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 육군은 오클라호마 포트 실(미 포병학교) 지휘관에게 e메일을 보내 극장에서 총격 사건 발생시 대처 요령 등을 주지시켰다. 대표적인 극장 체인 ‘AMC’와 ‘랜드마크 극장’은 ‘조커’ 상영 기간 관객의 코스튬(캐릭터 의상) 및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다고 알렸다.

영화 한 편 상영에 왜 이렇게 ‘심각’할까. 두말할 것 없이 7년 전 ‘다크 나이트 라이즈’ 때 오로라 극장 총기난사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2012년 7월 20일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한 영화관에서 머리카락을 주황색으로 염색하고 방독면을 쓴 남성이 최루탄을 던지면서 총을 난사해 12명이 숨지고 70명이 다쳤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당시 24세의 의대 중퇴생 제임스 홈스. 평소 말 수 없고 모범적인 ‘너드(괴짜)’형 인물로 알려졌던 그는 수사 결과 수개월간 치밀하게 대량살상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 홈스에겐 12번의 종신형과 3318년의 징역이 선고됐다.

특히 오로라 사건 당시 홈스는 현장에서 “나는 조커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악당 조커에 심취한 모방범죄라는 관측이 쏟아졌다. 악당 관점의 영화 ‘조커’가 선보일 경우 또 다른 모방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인지 국내에서 15세 관람가인 ‘조커’는 미국에선 R등급(제한관람등급-고등학생 관람가)을 받았다. 가장 센 등급인 NC-17(17세 이하 관람불가) 바로 아래다.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3부작은 모두 PG-13(보호자 동반한 13세 미만 관람가)이었다.(마블의 ‘어벤져스’ 같은 수퍼히어로물도 대부분 PG-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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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례적인 R등급 ‘어른들의 잔혹우화’



그런데 최근 미국 잡지 ‘배너티 페어’가 당시 홈스 사건을 담당했던 조지 브라클러 지방검사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홈스 사건과 악당 조커 사이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한다(지난 2일 온라인 보도). 검사는 복역 중인 홈스를 수차례 면담했지만 조커를 추종하는 기미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홈스가 사건 직전 머리를 주황색으로 물들인 건 친구가 파랗게 염색했기에 다른 색을 선택한 것일 뿐이었다.(심지어 조커는 녹색 머리다!) 범행 당시 조커를 들먹인 적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수감된 뒤 주변 죄수들이 “헤이, 조커!”라고 불러서 비로소 자신에 대한 풍문을 알게 됐다는 게 그의 진술이다.

그럼 왜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관이었을까. 사실 홈스가 노린 건 당일 가장 혼잡한 인기 극장이었을 뿐이었다. 거기서 상영되는 게 ‘어벤져스’건 ‘쥐라기 공원’이건 상관없었단 얘기다. 전편인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가 요절하는 바람에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는 조커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결국 오로라 사건이 악당 조커를 동경한 모방범죄란 건 충격과 공포 속에 빚어진 '도시 괴담'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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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콜로라도주 오로라시의 한 영화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숨지게 한 제임스 홈스. 사건 직전 머리를 주황색으로 염색한 특이한 행각 등으로 인해 코믹스 악당 '조커'를 모방한 범죄라는 의혹이 일었다. [AP=연합뉴스]



홈스의 범행 동기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만 검사가 책까지 펴낸대로 조커 모방범죄는 아닌 걸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고 '조커 모방설’을 여전히 신뢰한다. 어쩌면 앞서 비슷한 일들의 영향일 수 있다. 영화적 망상에 사로잡힌 이들이 반사회 영웅을 자처하며 애꿎은 사람들을 해친 사건 말이다. 대표적인 게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94년작 ‘내추럴 본 킬러스’(국내에선 ‘올리버 스톤의 킬러’로 개봉)를 둘러싼 모방범죄들이다.

영화는 불행한 어린 시절 때문에 사회에 대해 비뚤어진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찬 젊은 두 남녀가 살인을 마구 저지르다 체포된 이후 되레 대중스타가 되고, 매스컴의 각광 속에 옥중 인터뷰 중 탈옥한다는 이야기다.(어딘가 ‘조커’ 비슷한 느낌도 난다) 감독이 마약에 취해 찍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장면 장면이 잔혹하고, 결과적으로 R등급도 후하다는 비판이 거셌다. 게다가 영화를 흉내 낸 듯한 사건 사고가 줄이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그 중 최악이 1999년 4월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에서 2명의 고교생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교사 등 1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현장에서 자살한 이들 고교생은 ‘내추럴 본 킬러스’를 20여 차례 봤던 데다 자신들이 이 사건으로 유명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영화화까지 바란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소송이 제기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연예산업 관계자들을 불러 폭력적 영화 비디오를 청소년에게 팔지 말라고 촉구하는 등 엄청난 파란이 일었다.

‘조커’는 ‘내추럴 본 킬러스’에 비하면 덜 잔혹하고 주인공의 광기 또한 ‘질환’의 일종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영화를 둘러싼 긴장이 여실한 것은 영화가 반사회적 인물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배트맨 이야기에서 조커는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무고한 이들을 폭력적으로 살육하는 살인마다. 그런데 ‘조커’에선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의 외톨이(loner)에게 비정한 사회가 훨씬 두드러진다. 외톨이 아서는 처음엔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만 혼란한 사회에 힘입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빌런’ 조커로 진화해간다.



악당의 탄생과 '취약계층' 소외 버무려



영화로 인한 모방범죄가 벌어지면 영화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영화와 범행 간의 직접적 인과관계를,따지기란 쉽지 않다. 폭력적인 게임과 범죄 사이의 상관관계를 따지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매년 북미에서만 연인원 수천만 명이 R등급 영화를 보는데도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오히려 예술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논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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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에서 토크쇼 진행자로 출연한 로버트 드 니로(왼쪽).[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런 점에서 ‘사소한 발견’이 주목한 것은 영화 속 아서에게 총이 쥐어지는 과정이다. 동네 청소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일터에 온 그에게 동료 랜들(글렌 플레슬러)은 다급한 상황에서 쓰라며 권총을 건넨다. 호의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총기 불법 판매다. 총기에 비교적 관대한 미국일지라도 아서처럼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총기 구입 및 소지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선 영화 같은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진짜 죽음은 이렇게 초래된다.

아서가 그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정신상담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상담사는 해당 프로그램이 ‘예산 삭감’으로 인해 폐지될 거라면서 “그들(정부)은 당신에게 관심없다, 나같은 이들에게도”라고 되뇐다. 사회취약층 대상의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있는 미국 현실을 무겁게 꼬집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26일 한국 기자들과의 라이브 컨퍼런스(화상 기자회견)에서 필립스 감독은 “아동 학대의 트라우마나 취약계층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등을 논의할 기회가 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 내 삶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코미디였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서가 새하얀 병원 복도에서 우스꽝스럽게 도망 다니는 모습을 비춘다. 이 모든 게 어느 정신질환자의 '망상'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마무리다. 122분간 ‘슬픈 조커’에게 감정이입했던 관객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다. 조커는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광기 뿐이라고 속삭이지만, 찰리 채플린 말처럼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아니던가. 비극이든 희극이든 견디는 연습만이 우리를 구원하리. 그러고 보면 웃음을 제때 참을 수 있는 것만 해도 복받은 인생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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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한 장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출처 : http://news.zum.com/articles/5541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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