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자동차 디자인의 앞날을 미리보고 싶다면

[Erin 칼럼] 자동차 디자인의 앞날을 미리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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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먼저 말씀 드리자면, 이 글에 몇 년 후 자동차 디자인계의 유행과 흐름에 대한 예측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특정 대상을 통해 이를 유추해볼 수 있음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에 대한 사례와 경험담을 소개합니다.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방식은 시대와 유행, 그리고 기술에 따라 변화합니다. 이에 맞추어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능력과 자질뿐 아니라, 채용하는 숫자마저도 바뀌기 마련이죠. 예컨대 예전에는 아주 많은 디자이너를 뽑은 후 그들끼리의 내부 경쟁을 통해 더 정제되고 다듬어진 결과물을 도출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소수의 천재 디자이너를 뽑아 그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더욱 자극시키고 확장하려 합니다. 회사 당 디자이너의 채용숫자가 예전보다 대폭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보다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에는 한 번 구매하면 장기간 소유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깔끔하게 정리된 조형미를 우선시 했습니다. 반면, 요즘에는 극심해진 경쟁과 기술의 상향평준화로 짧은 시간 내에 강인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자극적인 스타일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정제된 균형미보다 한 눈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뾰족한 개성의 차들이 많아진 이유입니다.

물론, 이런 흐름은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릅니다. 커다란 흐름과 별개로 국가별, 브랜드 별로 서로 다른 지류를 보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 모습을 예측하기 힘든 이유지요.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몇 년 후에 특정 브랜드 혹은 자동차 생태계 전반적으로 어떤 디자인개념이 유행하고 어떤 대세 세력이 생겨날지 예측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들, 즉 예비 디자이너 생태계와 트렌드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저는 2000년대 후반, 일본에서 다수의 자동차회사 디자인 팀에 지원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같이 지원했던 수 많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을 볼 수 있었죠. 당시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은 신입 디자이너들에게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무척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림실력이나 이를 통한 화려한 스타일링보다는 실생활에 도움이 될 기능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했던 것이죠. 당연히 이런 것을 잘 하는 친구들이 최종적으로 채용되었고 모두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자 노력했습니다.

 

 

 

사진은 본문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중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지요. 일본 모 브랜드 인턴쉽에 A, B 두 지망생이 모였습니다. A지망생은 그림을 무척 유려하게 잘 그렸고, 언변도 화려했으며 누가 봐도 디자이너 같은 아우라(?)가 넘쳐흘렀습니다. 반면 B지망생은 말도 어눌했고, 그림실력은 처참한 수준이라 미대생이라는 것도 믿기 힘들 정도였지요. 다만 B지망생은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자동차의 곳곳에 적용할 수 있는 사소하고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을 선보이기 좋아했습니다. 최종결과가 어땠을까요? 예상하시듯 B지망생이 채용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토요타나 스바루 등 일본의 수 많은 회사들에서 목격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이 스타일링 능력보다는 실용적 아이디어 능력을 중요시 여겼던 것이죠. 그 결과, 일본차 디자인은 유려하고 아름다운 스타일링이 줄어든 반면, 실용적이고 아기자기한 재치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요즘 시대 화두인 임팩트와 개성을 억지로 더하려다 보니 다소 이상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분명 90년대까지만 해도 Japanese Classic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큼 아름다운 차들이 가득했는데 말이죠.

 


반면, 화려하고 유려한 그림을 그렸던 A지망생은 그 이후 독일을 대표하는 프리미엄브랜드 디자인팀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 정제되고 함축지향적인 스타일링을 선호했던 해당 프리미엄브랜드 디자인은 요즘,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고 분출지향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요.

우리나라차의 디자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 인턴과 같은 시기였던 2000년대 중 후반, 디자이너 지망생 세계에서 전세계적으로 돌풍을 몰고 왔던 키워드는 ‘한국 학생’ 이었습니다. 전세계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포트폴리오를 올리는 국제적 웹사이트에서 한국 학생들 작품은 초미의 관심대상이었죠. 그림을 너무나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당시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던 손 그림+포토샵의 혼합렌더링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3D 프로그램이었던 라이노나 알리아스 등도 외국의 학생들에 비해 빠르게 학습해 나갔습니다. 엔지니어링적인 고민이 부족하다는 초반의 지적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만큼 실력상승수준이 엄청났지요. 새로운 포트폴리오가 올라올 때마다 사실상 우리나라 학생들끼리의 전쟁터가 될 정도였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안에서 박 터지게 싸우던 경쟁에 지쳐 해외로 눈을 돌렸더니 이미 그들보다 앞서 있었던 상황이랄까요.

 


당시는 현대차 대표 중형차였던 NF쏘나타와 그랜저TG가 어코드 디자인을 베꼈네 마네 시끌시끌했던 시기. 하지만 적어도 미래의 디자이너가 될 글로벌 디자이너 지망생 세계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을 매우 넉넉하게 추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의 결과가 어땠고, 지금이 어떤지는 우리모두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 디자인팀에 한국인 없는 곳이 없으며 이미 핵심요직을 맡아 유명한 스타디자이너가 된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반면, 일본은 피닌파리나의 오쿠야마 켄과 아우디의 와다 사토시가 각 회사에서 퇴임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이들을 이을만한 일본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디자인계에 일본인 대가 끊어진 것입니다.

제품의 디자인 완성도를 보아도 NF쏘나타 시절 현대 디자인의 위상과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이고요.

 


앞으로 몇 년 후 현실화될 자동차 디자인계의 대세, 유행, 트렌드, 흐름. 이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여러 분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방향성을 좀 더 정확하게 제시해볼 수 있겠고, 기자는 예측기사를 쓸 수 있겠으며, 관련 산업계는 선행 투자 방향성을 설정해볼 수 있겠지요.

전세계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들의 수 많은 포트폴리오는 지금도 인터넷 상에 매일같이 올라오고, 전세계 미술대학의 산업디자인과는 해마다 공개된 졸업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SNS에는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자신의 디자인과 견해를 올리는 컨텐츠가 차고 넘칩니다.

그 중 무엇이 가장 핫하고, 그들이 어떤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어떤 점을 중요시 여기는지 파악해볼 수 있다면 미래를 조금 더 일찍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만, 인스타 팔로우 중인 예비 디자이너들의 새 작품이 있나 찾아보러 가야겠습니다.

출처 : 모터그래프(https://www.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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