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목 없는 '제목 없는 거위 게임' 리뷰
툭 찍어 넣은 눈동자는 심연을 삼킨 듯 깊은 어둠이 내린 검은빛이며
큰 꽁지를 흔들며 걷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고
길게 뺀 목은 똬리를 튼 뱀이 몸을 세우듯 구불거리며
긴 주둥이를 열면 형언할 수 없는 기분 나쁜 파열음이 터져나오네
털로 뒤덮은 날개를 휘저으니
겁은 먹을 사람들이 그를 쫓아내거나
도망가기 바쁘더라
거위,
그는 사탄의 자식이 틀림없구나
▲ 외모부터 퓨어 이블, 그 자체
개발자마저 이 악마 같은 녀석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듯 차마 게임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건 아닐까. 게임의 이름은 '제목 없는 거위 게임'. 시작부터 괴상함이 풍기는 이 게임은 짐짓 예상할 수 있듯 플레이어가 직접 거위가 되어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해야 하는 거위의 행동을 보면 그는 마치... 거위새끼다.(다 큰 거위지만 하는 짓이 아이 같으니 새끼라고 부르겠다. 다른 의도는 없으니 오해하지 말도록.) 작고 영악한 이 생명체의 움직임을 맡게 되면 몇가지 간단한 임무가 있는데 대체로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난거리다.
정원에 들어가 농작물을 훔치고 정원사에게 물을 뿌리고, 소년을 전화 박스에 가두거나 마시던 차를 내뱉게 하고. 거위 자신에게 딱히 중요한 내용이라기보다는 그저 남들을 괴롭히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행동이다. 그저 남 잘 안 되는 꼴을 보기 위한 게임이라니. 제대로 악인, 아니 악Duck한 Goose가 되어보는 거다.
개발자는 이 게임을 슬랩스틱 스텔스 샌드박스로 설명하고 있는데 게임을 조금 하다 보면 이보다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싶어진다.
우선 슬랩스틱. 과장된 움직임으로 넘어지고 반응하는 희극의 종류인 슬랩스틱은 '이름 없는 거위 게임'을 크게 관통하는 포인트다. 게임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거위의 허술한 장난에도 곧잘 속는 심약하고 아둔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망치질을 하다 꽥 지르는 거위 울음에 놀라 손가락을 찧어버리고 울타리 개구멍 사이로 도망간 거위에 안절부절 해한다. 거위를 피해 스스로 전화 박스에 갇혀버리기까지 하는데 그 행동 하나하나가 만화 '톰과 제리'에서나 볼법한 과장과 유머가 섞여 있다.
▲ 손을 찧은 정원사를 보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거위라니, 악마 그 자체
멍청해 보이는 거위새끼를 조작하지만 나름 은신과 몰래 접근하는 잠입액션의 특징도 꽤 잘 드러나 있다. 인간들이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하면 나름 바로바로 알아챈다. 또 숨겨놓은 물건을 찾으러 거위새끼 뒤를 쫓고 자기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정도는 할 줄 안다.
적당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간을 따돌리기 위해 플레이어는 수풀에 몸을 숨기다가 주둥이만 내밀어 물건을 빼 와도 되고 인간들이 들어오지 못할 개구멍으로 이집저집 들락거려도 된다.
샌드박스를 표방하는 게임답게 강제로 플레이를 유도하는 시스템은 많지 않다. 시간제한이 없다 보니 여러 목표를 자유롭게, 원하는 순서대로, 풀 수 있는 정도만 클리어하면 된다. 간혹 다음 지역으로 나갈 핵심 임무가 정해져 있는데 이런 종류를 제외하면 수행하든, 수행하지 않든 게임 진행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 지역으로 가지 않고 해보고 싶은 장난은 다 해봐도 되고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 사람을 괴롭혀도 된다.
▲ 목표가 있긴 한데...
고작 거위새끼의 장난이 멀쩡한 사람들에게 통할까도 싶지만,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이런 장난에 곧잘 넘어가 준다. 사실 이게 게임의 핵심 재미 중 하나지만, 떨어지는 인공지능 탓에 게임에 꼭 필요한 심장 조이는 재미가 없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작 조류에 속아 넘어가는 NPC가 아니라면 그것도 문제다. 공격은커녕 몇 가지 동작 없는 거위새끼 입장에서 다크소울 뺨치는 고난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지금이 나름 적절한 인공지능 설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쯤 되면 적당히 멍청한 인간들을 골려주는 데 나름 신이 난다. 이 작은 악마는 나까지 못 돼먹은 거위새끼로 만들고 있구나.
▲ 주인 쫓아내고 카메라 독차지한 관심병까지, 안 좋은 거 다 가진 그 거위
인공지능보다 더 불만스러울 수도 있는 건 거위새끼의 움직임이다. 플레이어가 거위새끼를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은 뒤뚱거리며 걷거나 더 빠르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달리기, 고개를 숙이기, 물건을 부리로 물기, 날개를 활짝 펴 덩치를 키우기, 그리고 '꾸엑 꾸웨엑' 울기 정도다.
실제로 이동을 제외하면 게임에 영향을 주는 건 부리로 무는 것과 울기, 단 둘뿐이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는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가판대에 파는 사과를 물어야 하는데 그 옆에 당근을 문다거나 분명 인간의 움직임을 피했다 싶은 때 따라 잡히거나 하는 경우가 으레 있다.
그중 최고는 방향전환이다. 거위새끼는 급회전을 못 해 방향을 한번 꺾을 생각이라면 4차선 도로에서 4차로부터 4차로로 유턴하듯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야 한다.
물론 실제 거위라고 생각해본다면 이게 더 사실적일 테지만, 기존의 게임과는 다른 조작 패턴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라면 남들 웃을 때 짜증 견디며 플레이할지도 모르겠다.
▲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거위
다른 건 모르겠지만, 분량만큼은 확실하게 아쉽다. 빵빵한 개발력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채우는 AAA과 달리 인디 게임에서야 플레이타임을 평가 기준으로 논하는 게 어려운 것을 참작해도 말이다.
게임에서 따로 챕터를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핵심 지역과 할 일 목록에 따라 나누면 채 10개가 되지 않는 지역이다. 또 막히는 임무를 넘기거나 핵심 퍼즐만 풀고 지나간다면 조금씩 헤매도 2시간 안으로 클리어할 수 있다.
물론 2회차에 들어 미처 깨보지 못한 퍼즐을 풀어보고 임무에 없는 장난 거리를 찾을 수는 있지만, 골탕먹일 방법 자체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보니 반복의 가치가 큰 편은 아니다.
아. 빠져들 만하니까 그만 하라니, 역시 거위새끼다운 악랄함이다.
▲ '후후, 속았구나! 휴먼!' 플레이거리를 직접 찾아가면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여러 아쉬움을 게임플레이와 함께 달래주는 건 바로 게임 속 효과음이다. 사실 이걸 배경음인지, 효과음인지 확실하게 구분 짓긴 어려운데 앞에서 잠깐 언급한 '톰과 제리'같은 만화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소 게임에는 별다른 배경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게임 시작, 혹은 새로운 지역에 갔을 때 정도에만 나온다. 나머지는 거위새끼의 발걸음 소리와 울음소리, 물소리, 깜짝 놀란 인간들의 신음 등 효과음 정도가 전부. 하지만 상황 상황에 적절하게 피아노 소리가 게임에 더 몰입하게 한다.
거위새끼를 쫓아내려는 인간이 다가오면 적막을 깨며 묵직한 피아노 소리가 '쾅' 울린다. 물건을 찾으려는 인간이 다가오면 급박한 연주로 이어지고 점점 고조된다. 잘 도망갔다면 긴장감 대신 안도감이 느껴지는 선율이 자연스레 울린다. 또 인간을 골려줄 때는 경쾌하고 가벼운 피아노곡이 거위의 발걸음에 맞춰 시작된다.
사실 게임 도중에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이 마치 거위새끼의 움직임처럼 울리니 음악이 나온다는 것조차 잊고 몰입하게 한다. 물론 게임이 끝나도 기억나는 명곡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의 음악은 플레이어를 게임에 집중시키기 위한 역할에 온 힘을 다한다. 그러기에 플레이어 스스로 이 거위새끼가 되는데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의 특징들은 웰메이드 인디게임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으레 가지는 공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픽은 유화 스타일의 독특한 해석을 가졌고 가슴 따듯해지는 힐링 스토리 같은 것도 없다. 흔한 성공 방식 대신 유머를 통한 플레이를 근간에 삼았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주는 '휴먼 폴 플랫'이나 '갱 비스트'류의 게임과는 또 다르다. 두 게임은 괴상한 조작과 움직임에 따른 무작위성으로 재미를 냈다.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어 둔 골탕 요소와 플레이어가 그 요소들을 가지고 놀도록 잘 정제하고 유도한 유저몰이에서 나온다.
이쯤되니 이 사악한 게임은 귀여운 거위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유도한 개발진이 진짜 악마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실 이런 거 딱히 게임하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면에 잠재된 악동 기질. 아니 거위새끼 기질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온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자. 그리고 즐거워하자. 이건 그런 게임이다.
원문보기: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227355&page=1#csidxa57601450c83b7b8bd31c3947a878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