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여년 만에…‘애린원’ 1000마리 유기견 세상 밖으로 나온 날
[애니멀피플] 사설보호소 ‘애린원’ 폐쇄 현장
개들은 온몸으로 짖으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오물과 진흙으로 뒤덮인 보호소 통로에는 밖의 소란을 구경나온 개들로 가득 들어찼다. 목줄도 없이 몰려다니던 개들은 사람들이 들어오자 서너 마리씩 모여 앉아 몸을 웅크렸다. 개들은 케이지, 이동식 건물, 견사에 무방비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공포에 떨며 짖는 개에서부터 다가와 냄새를 맡는 개까지, 애린원 1600여평 부지 안에는 셀 수조차 없이 수많은 개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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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시도’로 시작된 철거
국내 최대 규모의 사설보호소인 ‘애린원’이 25일 철거됐다. 이날 오전 경기도 포천시 애린원 앞에는 철거를 위해 모인 경찰, 소방관, 법원 집행관, 수의사, 동물단체 활동가 등 200여 명의 사람으로 혼잡했다. 애린원 앞 2차선 도로에는 구조에 필요한 강아지 이동장 수십 개가 2층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강제집행이 시작되자 공경희 애린원 원장은 철문을 굳게 잠그고 저항했다. 공 원장은 가스통을 들고나와 강제로 들어오면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다. 실제로 불을 지피기도 했으나, 법원 집행관과의 제지로 결국 보호소 밖으로 끌려 나왔다. 대치 30여분 만의 마침내 애린원의 철문이 열렸다. 몸싸움 끝에 나온 공 원장은 “개들을 내버려두라”며 계속 목소리 높여 항의했다.
가장 먼저 개들의 구조가 급박하게 이뤄졌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수의사, 훈련사, 활동가들이 이동장을 들고 애린원 안으로 진입했다. 시설 철거에 앞서 개들을 이동장에 넣어 밖으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강제집행의 대상은 사단법인 애린원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부지 위 시설물들로, 1천 여 마리 유기견들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2012년부터 애린원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동물단체 생명존중사랑실천협의회(이하 생존사·현재 비글구조네트워크로 통합)는 “오늘 애린원에서 구조된 개들은 생존사가 마련한 인근 부지에서 머물다가 철거가 끝난 애린원 부지로 돌아올 예정이다. 낙후한 시설과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나면 새 시설물이 마련될 때까지 약 보름간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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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장에 담겨 한 마리씩 밖으로
보호소 진입구를 따라 이동장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구조는 목줄이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개체들부터 이뤄졌다. 개들은 딱히 공격성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쉽게 잡히지도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고,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손을 뻗으면 도망가거나 이동장에 들어갈 때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보호소 내부 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대형견 서너 마리가 판자로 지어진 집을 같이 나눠 쓰고 있는 한편, 아예 거리의 개들처럼 보호소 안을 몰려다니는 개들도 상당수였다. 너댓곳의 이동식 건물 안에는 수십여 마리의 중소형 믹스견들이 제대로 된 식기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곳의 문을 열면 악취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였다. 곳곳에 사료 포대가 눈에 띄었지만, 배식상태도 엉망이었다. 사료를 담은 고무 양동이에는 오래전 떠놓은 듯 털 뭉치들이 앉아있고, 개가 방금까지 할짝대던 물그릇 안엔 죽은 쥐가 떠 있었다.
피부병으로 거의 털이 남아 있지 않은 개부터 곳곳에 털이 너무 뭉쳐서 도저히 눈이 보이지 않는 개도 있었다. 한 견사에서는 어미 개와 함께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손바닥만 한 새끼 여러 마리가 발견됐다. 새끼들은 이미 죽어 굳은 채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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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은 개가 살게 된 이유
애린원이 국내 최대규모의 사설보호소가 된 데에는 개체 관리가 되지 않은 탓이 크다. 애린원은 20여년 전 공경희 원장이 야산에 사비를 털어 견사를 짓고 유기견을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애린원의 사정이 알려지며 시민 후원금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이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유기견보호 의뢰가 올 정도로 보호소의 규모도 커졌지만, 이를 둘러싼 갈등과 논란도 함께 커졌다.
수의사단체 등이 의료 봉사로 중성화 수술을 때때로 시행하긴 했지만, 자체 번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버려진 동물뿐 아니라 보호소 내에서 태어난 개들까지 더해져 보호소 내 동물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개체 수의 급증은 보호소 내부의 위생, 질병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과거 애린원의 유기견·유기묘 수는 2천~3천 마리 수준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 관계자는 현재 애린원 내 유기동물의 수를 1천~1천200여 마리로 추정했다.
2015년에는 애린원이 위치한 땅 주인이 나타나며 토지 분쟁도 겪었다. 부지의 주인이 소송을 제기해, 법원이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유기견들의 거취 문제로 실제 철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것은 2016년 생존사가 공 원장이 후원금을 개인적 목적으로 횡령했다고 고발하면서부터다.
이후 공 원장의 횡령이 무혐의 판결이 내려지자, 생존사는 애린원 땅 주인과 직접 임대계약을 맺고 토지를 점거한 공 원장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해 2017년 7월 의정부지방법원으로부터 시설 철거 명령을 받아냈다. 그러나 실제 철거는 애린원 명의변경, 시설물 구조 변경 등으로 여러 난관에 부딪혀 오늘날까지 미뤄졌다.
개들의 소유권은 어떻게 될까? 시설이 철거되더라도 유기견들은 여전히 사단법인 애린원 소유다. 비구협은 원래 애린원이 지불해야 하는 강제철거 비용을 대신 납부하고, 개들의 소유권을 이전 받을 계획이다.
비구협 법률대리인 권유림 변호사는 “지난 1월 의정부지법의 철거집행 결정 뒤 비구협은 수천만원의 철거 비용을 애린원 대신 법원에 납부한 상태다. 비구협은 애린원의 부채를 대신해 개들을 채권보전 방식으로 보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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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까지 이어진 긴급 구조작전
‘애린원 해체’는 유기견 구조-시설물 철거-토지 정화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구조 작업은 오후 2시까지 이어졌지만, 이동장에 담겨 나온 개는 절반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이날 보호소 내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사전에 법원에 집행 인원으로 등록된 80여명에 한정됐다. 철거인력 50명, 수의사 16명, 훈련사 16명 등이었다.
평소 사람과의 소통이 적었을 개들을 구조하는 데에 어려움도 따랐다. 관심을 보이며 사람에게 다가오던 강아지도 손을 대려고만 하면 멀리 도망가 버렸다. 대형견들은 사람 서너명이 붙어 임시 발판을 방어막으로 삼아 구석으로 몰고 나서야 간신히 이동장 안으로 넣을 수 있었다.
한국유기동물복지협회 연보라 본부장은 “개들의 상태가 개농장보다 심각하다. 순화가 거의 되지 않은 야생 상태와 가깝다. 입질이 있는 개들도 많고, 사람을 경계하는 개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개들끼리 약한 개체를 공격하는 등의 사고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조에 참여한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이학범 수의사는 개들의 상태를 묻자 “너무 좋지 않다”고 간단하게 답했다. 그는 “평소 3~4년간 애린원 봉사에 참여해왔다. 10여년 전 700~800여 마리였던 개들이 현재는 개체수도 파악이 안될 정도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가 입고 있는 파란 수의사복에는 개들의 진흙 발자국으로 군데군데가 더렵혀져 있었다.
유기견 구조 작업은 밤 9시 이후까지 이어졌다. 애초 낮 2시에 예정됐던 시설물 철거는 예정 없이 연기됐다. 유기견들은 비구협이 애린원 부지 인근에 마련한 임시거처로 이동해 밤을 보내게 된다. 비구협 관계자는 “9시까지 대부분 이동을 마쳤지만, 아직 애린원 부지 안에 100여 마리 개가 남아있는 거로 추정된다. 오늘은 1차 구조작업을 마친 것이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날짜를 잡아 2차 구조 및 철거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10시까지 비구협이 애린원에서 구조한 개는 모두 1043마리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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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쁜 날…매듭이 풀린 느낌”
현장에서 만난 여러 관계자는 애린원을 ‘숙제’라고 표현했다. 3년 전부터 생존사를 꾸려 애린원 사태해결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중성화 미비로 한 마리의 유기견이 수십 마리의 유기견을 양산하는 것은 보호소 패턴 중 가장 가혹한 사례다. 애린원 폐쇄를 강행했던 이유는 누군가 여기서 애린원의 시계를 멈추지 않는다면 고통과 시련의 악순환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린원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10여년 전부터 봉사와 후원을 이어왔다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동물보호단체 다솜 김준원 대표는 “오래전부터 봉사를 오다가, 최근에 탈퇴했지만 오늘은 너무 행복하다. 공 원장이 성역 같이 지켜오던 이곳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이 정말 많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제 매듭이 좀 풀리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포천/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