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들었던 ‘자본주의 꽃’… 400년 만에 역사 속으로 [S 스토리]
종이로 만들었던 ‘자본주의 꽃’… 400년 만에 역사 속으로 [S 스토리]
종이증권, 향료 무역전쟁 때 탄생 / 한국선 1890년대 조선 개항기에 등장 / 증권 디자인으로 회사 정보·평가 가늠 / 정보화시대 들어서면서 점점 간결해져 / 증권의 디지털 변신은 세계적 추세 / 발행·유통·소멸 전 과정 디지털 기록 / 탈세 증여 등 줄어 시장 투명성 높아져 / 실물 발행 안해 기업 자금조달도 효율
◆증권의 탄생
주식증권을 발행한 배경은 오늘날 주식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영국, 포르투갈 등 향료무역전쟁에 가담한 국가들과 경쟁하기 위해 네덜란드 무역상들은 증권을 발행해 투자자를 끌어모아 자본을 집중했다. 네덜란드 무역상들은 투자금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내는 종이 권리증서를 만들었는데, 그게 동인도주식회사의 증권이자 주식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주식증권을 거래한 곳이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다. 우리나라 역사상 근대적 유가증권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개항기인 1890년대 말 국내에 들어온 일본계 은행이 발행한 채권 형태의 증권이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 치하에 자본주의가 조금씩 이식되면서 1949년 11월 22일 최초의 증권회사인 ‘대한증권주식회사’가 설립된 데 이어 1956년 3월에 ‘대한증권거래소(현재 한국증권거래소)’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증권 거래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근대 증권의 발행·유통·권리행사·소멸까지 이르는 과정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처음 등장한 증권이 ‘종이’로 만들어졌다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 형태의 증권으로 바뀌었다. 국내법을 포함해 전 세계 법이 수백 년 동안 종이증권과 같은 현물을 기준으로 했다. 하지만 전자증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건이기에 상거래 기준이 달라진다. 금융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화려했던 종이증권의 모습
근대에 발행된 증권을 보면 오늘날 증권과 달리 화려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특히 1904년 벨기에 브뤼허의 한 건설회사에서 발행된 증권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증권으로 꼽히기도 한다.
종이증권 디자인이 화려한 이유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은 투자자가 그 회사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데 증권의 디자인이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없는 데다가 통신기술이 열악했던 근대 사회에서 투자자가 회사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점을 노려 회사는 화려한 디자인의 증권을 제시해 신뢰를 굳히는 데 활용했다. 즉 “이처럼 멋있는 증권을 발부하는 회사니 믿고 투자하셔도 됩니다”는 뜻이었다.
시대가 갈수록 기업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현대의 종이증권 디자인은 간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과 유럽의 자본주의를 이어받은 미국의 경우 비교적 최근까지도 종이증권을 화려하게 만드는 문화가 이어졌다. 1992년 월트디즈니사에서 발행된 증권은 미키마우스 등의 캐릭터를 넣었고, 2002년에 제작된 코카콜라와 애플컴퓨터, 2011년에 제작된 구글의 증권도 어느 정도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반면에 국내 기업의 증권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것을 넘어 소박하다고 할 정도로 간결했다. 1987년에 발행된 포항제철, 1988년 현대자동차 증권을 보면 기업명과 금액 등 필수정보만 적혀 있다.
◆증권의 미래 ‘전자증권’
지난 1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자증권제도가 시작됐다. 2016년 3월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전자증권제도가 도입되면서 종이증권은 점차 줄어들어 400년 넘는 역사를 끝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종이증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전자증권이 도입되면서 자본시장의 효율성과 투명성이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증권의 상속과정에서 발생하는 탈세 논란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사를 중심으로 발행된 실물증권은 주주가 음성거래로 주식을 넘기는 과정에서 탈세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전자증권이 도입되면 모든 증권이 디지털로 기록에 남아 증권의 발행·유통·권리행사·소멸 과정이 투명하게 된다.
또한 기업의 자금조달 효율성도 증가할 전망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자사주를 액면분할하거나 주식을 발행할 때 길게는 수십일이 걸렸지만, 전자증권은 실물로 발행하는 과정이 없어 그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전자증권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덴마크가 1983년 최초로 전자증권을 도입한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앞다퉈 전자증권 제도를 시행했다. OECD 국가 36개국 중 한국이 34번째로 도입한 만큼 늦게 시작한 셈이다.
◆"주식거래 모두 디지털화… 금융 패러다임 전환"
금융업계에서 전자증권 제도 시행의 일등공신을 꼽는다면 모두 한국예탁결제원 박종진(사진) 전자증권개발지원단장을 지목한다. 박 단장은 전자증권개발단을 일선에서 지휘하며 성공적인 전자증권 도입을 이끌어냈다.
박 단장은 “전자증권은 증권의 발행·유통·권리행사·소멸까지 이르는 전 단계의 디지털화”라며 “단순한 증권의 전산화가 아닌 금융거래의 기준을 바꾼 것”이라고 평했다.전자증권이 시행되면 현물 중심의 금융상거래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 금융상거래로 전환되는 것이다. 박 단장은 “전자증권 제도를 도입할 때 과정이 간단치 않았던 부분이 현물 기준의 상법을 바꾸고, 은행 등 각 기관의 협조를 받아내야 했던 점”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전자증권 도입 이후의 기대효과로 금융 정보의 활용성 증가, 금융거래의 투명성 상승, 사회적 비용의 절감 등을 꼽았다. 박 단장은 “전자증권이 도입되면서 종이증권 보관 비용이 줄어들어 증권 예탁 수수료를 15% 인하했다”며 “전자증권 도입 이후 5년간 4352억∼904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세금 문제라든가 전자증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종이증권을 전자로 전환하는 것을 꺼리는 주주가 생각보다 많다”며 “당국과 기업 등이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