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IS] 나 그리고 당신이 될 수도 있었던 '조커'
[신작IS] 나 그리고 당신이 될 수도 있었던 '조커'
"나를 소개할 때 조커로 불러줄래요?"
코미디언을 꿈꾸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생애 처음으로 이뤄낸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로부터 해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남자는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가졌다. 미쳐가는 세상, 미쳐가는 사람들 속에서 희대의 악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조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배트맨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가상의 도시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당장 '헬조선'으로 바꾼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청소업체 파업으로 쥐가 들끓는 도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쥐 떼만큼이나 혐오의 감정도 들끓는다. 약자를 향한 차별과 박해는 일상다반사일 뿐이다.
아서 플렉은 고담시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기거하는 광대다. 분명 그는 선의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만난 아이에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보여주고, 어머니에겐 착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미디언의 꿈을 키우며 광대 일을 하는 소시민이다. 그러나 10대들에게 이유도 없이 얻어 맞고, 직장 동료의 배신으로 해고 당하고, 정신병을 가진 그에게 재정난을 이유로 시의 지원까지 끊어진다. 최악에 최악을 거듭하며 아서는 점차 세상과 함께 미쳐간다. 시도때도 없이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정신병을 앓는 아서. 처음엔 광대 분장을 하며 눈물을 흘렸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받을수록 크게 소리내 웃는다.
결국 착한 사람의 가면을 벗고 조커의 가면을 쓰기로 한 그는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였다"고 말한다. 악당 조커로 다시 태어난 그에게 이 세상이 또 다른 의미의 코미디가 된 셈이다.
그 어떤 장면 하나, 설정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의미를 담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며 웃는 부유층들, 그리고 극장 앞에선 평범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며 대치하고 있다. 부유층들 사이에 몰래 숨어 들어가 울부짖듯 웃는 아서. 이렇듯 이 영화는 악당으로 변모해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를 투영해낸다.
아서 플렉, 그리고 조커로 변신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고(故) 히스 레저 등 역대 조커 배우들의 모습을 완전히 지워내고 새로운 조커를 재창조했다. 하루에 사과 한 알만 섭취하며 23kg를 감량한 그는 기괴할 정도로 마른 몸으로 캐릭터의 외면부터 완성했다. 사회의 약자가 희대의 악당이 돼 가는 과정을 섬세한 연기로 자연스럽게 이어냈다. 자세부터 말투까지 위축된 원래의 아서가 처음 사람을 죽이고 화장실에서 홀린 듯 춤을 추는 장면은 그의 애드리브로 완성된 장면. 완벽한 조커로 변신했음을 알리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광대 분장을 한 채 계단을 내려오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무섭도록 소름 돋는 연기를 펼친다. 특히 엔딩신의 호아킨 피닉스는 길이 남을 강한 전율을 남긴다.
둘도 없는 악당임에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감정과 생각을 흘려보내다보면 관객들은 모두 한 사람의 조커가 돼 있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코믹스 속 캐릭터를 현실에 발 내리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호아킨 피닉스의 역할이 8할이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배우로서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은 힘들었고, 관객 역시 시험하면서 조커에 대한 선입견을 뒤흔들 것이다. 우리의 현실 세계처럼 아서가 사는 허구의 세상에서도 쉬운 답이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토드 필립스 감독은 "호아킨의 연기 방식과 예측 불가능성이 조커 캐릭터에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계산을 하는 동안 호아킨은 재즈를 연주한다. 그의 연기는 용감하면서도 연약하다. 최고의 배우이면서 겁이 없다"라고 극찬했다.
'조커'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8분간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내며 코믹스 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코미디 영화 '행오버' 시리즈의 토드 필립스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을 맡았다. '스타 이즈 본'으로 감독으로서 실력을 보여준 브래들리 쿠퍼도 제작에 참여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도 꼽히고 있다. 또한, 로버트 드 니로르 비롯해 재지 비츠, 프란시스 콘로이, 브래트 컬렌 등이 출연한다. 2일 개봉.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