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시작'이 있고, 그 '시작'부터 잘하기란 쉽지 않다. 박소진은 '걸스데이 리더 소진'이라 불리는 10년 차 베테랑 아이돌이지만, 그 경력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섰다. 

전부터 간간히 해온 연기지만, 이제야 그것의 진짜 매력을 깨닫고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독하게 마음을 다잡은 박소진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출발, 그 첫 발걸음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노력해서 캐릭터를 구축했지만, 돌아온 시청자의 반응은 냉정했다. 

10년간의 아이돌 생활로 이골이 날 만도 한데, 날카로운 반응들에는 여전히 생채기가 났다. 그래도 박소진이 견딜 수 있었던 건,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토록 뜨거운 연기 열정이라면, 연기자로서 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첫 시작을 연 작품이 SBS '스토브리그'라는 좋은 드라마라 배운 게 많았다는 점이다. 

박소진은 '스토브리그'에서 스포츠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기자 겸 스포츠아나운서 김영채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극 중 김영채는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과 드림즈에 관해 민감한 문제들을 때론 객관적으로 때론 주관적으로 보도하며 드림즈의 행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자신의 실속만 챙기려는 김영채의 모습이 얄미워 시청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김영채가 얄밉게 보였다면, 그건 박소진이 김영채를 잘 그려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시청자 사이에서는 박소진의 발음이나 발성, 연기에 대한 지적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박소진은 자신에 대한 이 모든 평가를 애써 피하려 하지 않았다. "댓글은 전부터 다 봐왔어요. 어지간한 것들에 면역이 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안 좋은 반응들을 보면 조금 아프더라고요. 한편으로는 '확실히 얄미워 보였으면 됐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 시작하는 입장에서, 제 모든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죠. 제가 노력한 것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제 몫이에요. 이다음에는 더 나아질 거란, 저 스스로의 믿음이 있어 괜찮아요." 

▲ 박소진이 김영채가 되기까지 

박소진은 오디션을 통해 '스토브리그'에 합류했다. 

처음 오디션 합격 연락을 받았던 순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제작진이 영채 역할을 할 배우를 다른 역할들에 비해 오랫동안 못 찾고 있었대요. 오디션 현장에서는 '연락드리겠다'고 하길래, 안 됐을 줄 알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인사하고 나왔는데, 그러고 나서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바로 합격 전화를 받았어요. 너무 놀라고 기뻐 눈물이 났죠." 

캐스팅이 확정된 후 박소진은 김영채 캐릭터 분석에 돌입했다. 당연히 쉽지는 않았다. 특히 기준을 잡는 게 어려웠다. 

"이것저것 찾아보며 연습했는데, 직업적인 면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김영채는 기자이면서 아나운서이고, 앵커이기도 스포츠아나운서이기도 해요. 실제 스포츠아나운서들을 찾아보면, 채널마다 무게감이 다르고, 선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때는 생각보다 더 캐주얼하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제가 어떻게 섞어서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차라리 누구 하나를 롤모델로 삼으면 쉬웠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더 어려웠죠. 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부분들을 찾아 섞으려 했고, 그러면서도 너무 동 떨어지거나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김영채는 물어볼 건 물어보고 지적할 건 지적하며 할 말 다 하는 성격의 언론인으로 그려졌다. 때론 그게 지나쳐 팩트를 왜곡하기도 했다. 그런 김영채의 이기적인, 드림즈에 해가 되는 행동들은 시청자의 분노를 자아냈다. 실제 박소진은 김영채와 전혀 다른 성격이다. 그래도 박소진은 김영채를 이해하고 행동의 이유를 찾고자 애썼다.

"영채는 할 말 다하는 성격인데 저는 안 그래요. 그래서 오히려 영채를 이해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영채를 그냥 나쁘고 직설적인 사람으로만 생각했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영채가 길창주(이용우 분) 인터뷰 내용을 자기 멋대로 편집한 것도, 그렇게라도 해야 백승수와 만날 수 있다는 목적이 컸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계속 영채 행동의 다른 이유들을 찾으려 했죠." 

극 중 김영채는 백승수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여러 '빌런'들 중 하나였다. 빌런이 제 역할을 하려면, 주인공에 맞서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제작진은 박소진에게 남궁민 못지않은 에너지를 주문했다. 연기 경험이 적은 박소진에게는 또 하나의 어려운 숙제였지만, 상대역을 해준 남궁민의 도움으로 이 숙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에 좀 어려웠던 게, 첫 촬영에 갔을 때 감독님이 '백승수 단장과 에너지가 비슷하게 느껴지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이게 세게 연기해 달란 이야기인가, 여러 가지 고민들이 생겼죠. 다행히 남궁민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중간을 잘 찾아간 거 같아요. 남궁민 선배님은 '이래서 좋은 선배라고들 하는구나' 싶은 분이에요. 순간순간 고민될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힌트도 주시고, 리드도 정말 잘해주세요. '미녀공심이'를 통해 먼저 남궁민 선배랑 연기 호흡을 맞췄던 민아가 '정말 좋은 분'이라고 했었는데, 이런 면 때문이구나 싶었어요. 댄디하고, 남을 잘 배려하고, 이끌 줄 아는 분이세요."

▲ 연기자로서 전환점이 된 작품 '스토브리그' 

박소진은 훌륭한 선배님, 좋은 스태프들과 '스토브리그'라는 좋은 작품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또 좋든 나쁘든, 자신의 캐릭터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도 고마워했다. 자신을 '걸스데이 소진'보다 '김영채'라는 캐릭터로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신기했죠. 절 보면 보통 '걸스데이 소진?' 이라면서 다가와요. 그런데 요즘에는 연세 좀 있으신 분들이 '어? 탤런트 아닌가?' 하면서 다가오세요. '탤런트'라는 그 단어가 새롭고 정겹고. '야구에 산다, 김영채'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빵 터지기도 했어요. 되게 기분 좋고 감사했어요." 

이렇게 조금씩 연기자로서 인지도를 쌓아 나가고 있는 박소진은 '스토브리그'가 "전환점에서 만난 첫 작품"이라 정의했다. 

"소속사도 옮겼고, 배우로서 좀 더 구체적이고 큰 열정을 갖게 된 후에 만난 첫 드라마가 '스토브리그'예요. 물론 이전에도 열심히 안 한건 아닌데, 그때는 그냥 연기가 뭘까, 궁금한 정도였어요. 지금은 그에 비해 그 마음이 너무 크고 구체적이죠. 연기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자꾸 커져가요."

연기에 대한 박소진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계기는 2018년에 도전한 연극이었다. 

"그때 연극을 하며 처음 연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좋은 마음을 가진 선배들, 스태프들과 함께 케미를 맞추고 같이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깨닫게 됐죠.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비슷한 거 같아요. 눈 앞에 있는 내 열정과 딱 마주하는 기분,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무대에서 연기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재미를 안 박소진은 '스토브리그' 촬영과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준비를 병행했다. '스토브리그'가 종영하며 지금은 연극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 남들보다 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가 늦은 감이 있지만, 박소진은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모든 시작들이 늦었기에, 마음에 조급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그 늦음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즐거울 땐 확실히 즐겁고 고민할 땐 확실히 고민하며, 그동안 저도 다른 경험들을 저장해뒀잖아요? 그 경험들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20대 때는 완벽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완벽하지 않은 게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알아요. 복잡하게 뒤엉킨 것들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고민하고 조절하는 능력도 좀 생긴 거 같고요. 옛날에는 나이 들면 좋은 면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게 얼마나 괜찮고 좋은지 알게 됐어요. 이래서 예전에 언니오빠들이 '30대가 최고'라고 했구나, 싶어요.(웃음)" 

▲ 걸스데이 소진 보다는, 연기자 박소진 

박소진은 연기의 재미를 알고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확실히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기적인 배움과 성장, 그것 외에 다른 목표는 없어 보였다. 

"올해는 많이 습득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지금이 가장, 저 스스로 굳어있지 않은 채로 많이 배울 수 있는 때인 거 같아요. 물론 아직 부족한 면이 많죠.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해요. 그래도 제 마음이 크기에, 막막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언젠가 이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뿐이에요. 주변에 좋은 분들도 많고, 응원도 많이 받고 있으니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연기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박소진은 일단은 이 길에만 집중하고픈 마음이다. 당장 가수 활동 계획을 잡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볼 때 '걸스데이 소진이야?'라는 걸 좀 지우고 싶은 마음이에요. 더 연기자로 보이면 좋겠어요. 지금은 연기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싶어요. 가수 활동은 조금 나중을 보고 싶어요. 전 좀 더 나이가 들고 연륜이 있을 때, 다수가 듣지 않아도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지금은 연기가 너무 좋고,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 삶의 전부예요." 

그렇다고, 자신의 10년 역사인 걸스데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걸스데이는 박소진의 근간이고, 멤버들은 가족이다. 

"걸스데이 멤버들은 정말 저를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요. 제가 고민하는 것들도 들어주고, 서로 더 힘이 되어주려 노력하죠. 제가 가진 고민을 상의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정말 큰 힘이 돼요. 걸스데이 동생들은 제 힘의 원천이에요." 

이제 연기자로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박소진은 꾸준하고 묵묵하게 연기 경력을 쌓아나갈 계획이다. 

"이제 다른 작품을 하기 위해 또 열심히 도전하고 꾸준히 노력해야죠. '스토브리그'가 잘 돼 너무 좋지만, 차기작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차기작 선택에 부담은 없어요.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저한테는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게 부족했다면 다음에는 다른 걸 시도할 수 있는 거고, 그게 좋았다면 또 그걸 살려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저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연기해나가고 싶어요. 꾸준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연기에 임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사진=눈컴퍼니 제공] 

(SBS funE 강선애 기자) 

출처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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