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살려면 '건강 프로' 그만 보세요
양성우 | 글 쓰는 내과 의사. 책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저자.
친구라고 다 같은 나이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정신연령으로 구분된다. 누구는 어른스럽지만 일부는 유아시절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래도 "애는 역시 애"라고, 결국은 '까 보면' 다들 비슷하다. 어른스러운 아이들도 자기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논다. 이 때만 해도 친구는 그래도 친구다.
정신연령의 차이일 뿐이던 친구들과의 나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 육체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그래도 20대, 30대에는 괜찮다. 아직 그들의 몸은 새 것 같고, 망가질 일이 있어도 금세 회복한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과 아닌 사람 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젊음은 모든 신체적 문제를 해결한다. 잘 해 봤자, "나 너보다 잘 뛴다" 정도다.
그런데 40대가 되면 다르다. 이 시기는 흔히 '생애전환기'라 불리운다. 나는 40대 환자들에게 "이젠 더 이상 스무살 때 처럼 사시면 안 됩니다."라고 자주 조언한다. 이 때가 되면 심근경색, 암도 생긴다. 국가 차원에서 내시경도 자주 하라고 권장한다. 몸은 슬슬 낡기 시작하고, 관리 안 하는 사람들은 더 빨리 늙는다. 다 같은 친구들이어도, 관리하지 않으면 손 윗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친구라고 다 같은 나이가 아니다.
어느 60대 환자가 해 준 이야기다. 중학교 동창들끼리 열 몇 명이 모여 국내 여행을 갔단다. 관광을 마치고 대중 목욕탕을 들렀는데, 원형 온탕에 알몸으로 둘러 앉으니 서로가 서로의 몸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60대 친구들 모임이었지만, 그 작은 탕에 둘러 앉은 친구들 모습은 5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80대의 몸을 가진 친구는 50대 동창을 보며 부러움을 담은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던가. 친구라고 다 같은 친구가 아니니 말이다.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유기농 식품도 먹고, 건강식품도 주문하고,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을 하기도 한다. 또 건강검진도 받고 혹자는 자주 보는 자기 주치의도 있다. 그래도 누구는 건강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유전적 요인도 있을 테고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잘못된 지식, 또는 오래 교정되지 않은 시행착오다. 잘못된 습관들은 건강을 망친다. 젊을 땐 건강을 망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낙숫물이 10년을 떨어지면 돌을 뚫듯,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내과의사로서, 사람들의 건강관리 실수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흔한 실수들이고 충분히 교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해당되는 사항이 있는 독자시라면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시리라 믿는다.
#1 건강 프로그램 좀 그만 보세요.
건강에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가끔 자기 건강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든 건강 TV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책도 수집하듯 사 본다. 소위 '닥터 쇼핑'이란 걸 하기도 하는데,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 돌면서 마음에 드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다른 의사들을 만난다. 다른 의사들을 만났을 때 이전에 만난 의사를 탓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새로 만난 의사는 (자기도 욕 먹는 사람이 될까봐) 긴장하게 된다. 결국 그는 소신에 따라 진료하지 못하고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 당연히 그는 처음부터 모든 진단을 다시 시작한다.
이미 여러차례 완료한 치료가 다시 시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공이 많은 배는 반드시 난파된다. 물론 모든 책임은 선주가 지게 된다. 그의 책임은 많은 사공이 모두가 선장 노릇을 하게 내버려 둔 것이다. 좋게 말하면 많은 조언을 들은 것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선주가 그 누구도 믿지 못한 탓'이다. 나는 이런 이들을 만나면 "건강 TV프로그램 이제 보지 마세요."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환자분과 대화가 잘 통하는 주치의를 반드시 한 명 만드세요."라고도 말한다.
주치의가 자신을 알 시간을 적게 주고, 그가 명의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는 태도는 자기 건강을 나쁘게만 만들 뿐이다. 최고의 명의는 환자도 몰랐던 정보를 이끌어내주는 의사다. 그 일은 자기에게 애정을 갖고 면밀하게 지켜봐 주는 '자기 주치의'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건강은 그에게 맡기고 인생을 즐기시길 바란다.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주치의를 반드시 한 명 만드세요.
#2 유기농도 좋지만 건강검진이 더 중요합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심리 기저에 불안증이 있다. 신체가 잘못될 수도 있는 불안감 말이다. 이런 분들은 음식도 유기농만 먹고 하루에도 몇 시간이나 운동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분들 중 일부는 건강검진은 안 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검진에서 뭐 안 좋은 결과라도 나올까봐 너무 무섭다는 거다. 결국 불안함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식이와 운동, 당연히 중요하다. 관리를 잘 한 사람들은 노화를 최대한 늦출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전자 변이라는 강력한 변수도 생각해야 한다. 암 등 유전자 변이는 본인의 노력여부와는 관련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생활습관은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출 것이다. 하지만 검진을 하지 않는다면 암이 생겨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게 평생 열심히 관리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절규하고 싶지 않다면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기를 권해드린다.
#3 평생 운동, 혹시 안 할 생각이세요?
흔히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을 우리는 만성질환병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없던 병이다. 모두 혈관과 관련한 병들이고 오래 되면 무서운 합병증으로 발전한다. 대개 '건강을 잘 관리한다'라고 말하면 이 혈관질환을 잘 관리한다는 말과도 같다.
내과 의사가 이런 병의 관리자다. (나 같은) 내과의사는 지질 수치를 떨구고, 인슐린 분비 조절도 해 가는 그런 의사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환자의 협조만 있다면 훌륭히 관리 가능하다. 약도 시중에 많이 나와있고 방법론도 정해져 있다.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내과를 너무 늦게 찾지만 않으시면 된다. 때문에 건강검진을 자주 받고, 내과를 다녀야 할 때가 오면 정기적으로 출입해야 한다. 그러면 저승사자의 신발을 벗길 수 있다.
그런데 많이들 간과하는 점이 있다. 바로 정형외과적 문제다. 젊을 때 운동으로 너무 몸을 혹사한다. 평생 써야 할 관절을 닳아 없애는 사람도 많다. 정작 본인은 운동하니 건강해졌다고 믿는다. 이런 분들은 나이 들어 근육이 빠지면 걸을 때마다 무릎뼈 부딪히는 소리와 통증을 겪어야 한다. 현대인에게 운동이란 오래 살기 위한 습관이다. 재미만으로 하기엔 고려할 일이 너무 많다. 운동할 때 머리를 자주 다치면 뇌손상이 오고, 허리를 자주 뒤틀면 만성 요통이 생긴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운동이면 무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럴수록 노년은 힘겨워진다. 운동, 하는 거 좋다. 하지만 적당히 해야 나중에 덜 고생한다.
운동 좋죠, 다만 적당히 해야 노년에 덜 고생해요.
그래도 건강하게 살기 좋은 시대다. 좋은 음식은 지천에 널려 있다. 세부 전문가의 강의도 금세 찾아볼 수 있다. 건강 검진도 싼 가격에 할 수 있고, 운동 센터는 발에 치이도록 많다. 이런 시대에는 지름길 가거나 획기적인 방법을 찾다가 오히려 건강을 망친다. 잘 먹고, 자주 움직이고, 좋은 의사 만나면 건강할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법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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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836824&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