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여전히 존재하는 프랑스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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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여전히 존재하는 프랑스 식민주의 - 꾸르


'CFA 프랑'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프랑스의 옛 식민지인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14개국이 사용하는 화폐를 지칭하는 말이다. '프랑'이라는 용어는 옛 식민지에서 쓰이던 통화인 프랑스 프랑화를 지칭한다. 물론, 이 명칭은 식민지 시절 유산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프랑스는 여전히 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통화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선, 심층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앞서 기본적인 내용부터 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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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A 프랑을 거론하기 전에 먼저 두 개의 통화 연맹에 대해 알아야 한다.

1) 중앙아프리카 경제 및 통화 공동체(CEMAC; Communauté économique et monétaire de l'Afrique centrale)

카메룬, 가봉, 차드, 적도 기니,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공화국

2) 서아프리카 경제 및 통화 공동체(UEMOA; Union économique et monétaire ouest-africainea)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기니비사우, 말리, 니제르, 세네갈, 토고


이 두 개의 통화 연맹체 회원국들이 CFA 프랑을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CEMAC 프랑에서 CEMAC는 "중앙아프리카 재정 협력"의 축약어이며, UEMOA는 "아프리카 재정 공동체"의 약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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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두 개의 CFA 프랑은 정확히 같은 원리로 굴러가며, 유로화에 고정 환율제로 연동되어 화폐 가치가 정해진다(코모로는 코모로 프랑이란 다른 프랑화를 사용한다). 이렇게 15개 국가들이 "프랑화 지역"을 이루며, 인구는 1억 6,20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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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CFA는 공개적인 논의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안이다. 그러나, 점점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열띤 토론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기자 파니 피조와 세네갈 경제학자 동고 실라 심바가 저술한 "프랑스-아프리카 제국주의의 보이지않는 첨병: CFA 프랑의 역사 (L’arme invisible de la Françafrique: Une histoire du franc CFA)"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CFA 프랑과 그와 관련된 문제들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졌다. 프랑스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해당 주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시민들은 이 체제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만한 수단이 부족하다. 하지만, 근래들어, CFA 프랑은 더 이상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다루어지는 문제가 아니며, 아프리카와 프랑스의 기고문부터, 여러 행사, TV프로그램 및 각종 회의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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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22대 대통령 자크 시라크: 이제 솔직해지고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 은행에 보관되어 있는 돈 중 상당 부분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착취가 그 출원이라는 사실을)


프랑스 정부는 CFA 프랑은 그저 경제 통합, 그리고 통화 및 재정 안정성을 위한 요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통화에 반대하는 많은 아프리카 경제학자와 지식인들은 CFA 프랑이 일종의 "통화 노예"를 만듬과 동시에 아프리카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프랑스에 종속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의를 이해하려면 논쟁의 대상이 되는 통화의 기원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폭력과 억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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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의 프랑화를 의미했던 CFA 프랑은 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들의 공식 통화로서 1945년에 정식으로 창설 및 출범했다. 정확히는, 2차 대전에서 상당한 공헌을 한 식민지들에게 '그들만의' 통화를 부여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CFA 프랑 탄생의 현실은 피조와 실라가 지적하듯, 식민지 조약을 끝내기보다는 오히려 프랑스에게 매우 유리한 상업 관계의 복원이었다.


프랑스 입장에서 말한, 식민지들에게 더 많은 자치를 부여한다는 레토릭과는 달리, 이것은 근본적으로 프랑스의 작품이며, 프랑스 재무부에 의해 발행되고 통제된다. 즉, 프랑스는 새로운 통화의 액면 가치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식민 지배를 했던 열강들이 사용했던 방식인데, 지나치게 통화 가치를 뻥튀기시켜 식민지들에게 적용해 착취한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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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두 가지가 있다. 프랑스 수출 상품의 가격을 절하시켜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식민지들이 프랑스 본국으로부터 수입을 증대시키게 하는 것이며, 식민지 상품이 세계 시장에 수출할 때 비싸게 만들어 프랑스 본국의 잉여 생산물들을 식민지에 내다팔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2차 대전으로 인해 약화된 프랑스는 그렇게 수출입에서 이익을 거두면서 다시 시장 점유율을 올렸고, 원자재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프랑스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된 부분은, CFA 프랑으로 인해 식민지로부터 자원을 '공짜로'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있는데, 이는 예전에 그러했듯이 식민지 국가들의 통화를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통제 가능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피조와 실라가 기고하듯이, CFA 프랑의 목적은 프랑스의 프로파간다와는 반대로 프랑스가 정복한 영토들의 부(富)를 본국으로 빨아들이는 것을 촉진하고 프랑스의 경제적 지배를 보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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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화 타임라인)


물론 당시 기준으로 프랑스가 특별히 더 악랄한 편은 아니었다. 다른 열강들 또한 자신들의 식민지에 화폐 종속을 강요했다. 그러나 다른 열강과 프랑스의 차이점은 1950년대 탈식민화의 시대를 거치고 난 이후에도 프랑스의 제국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식민지 대부분이 독립하면서 자국의 고유 통화를 새로 만들었으나, 프랑스는 대부분의 옛 식민지들을 부추겨 CFA 프랑을 사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모로코, 튀니지, 알제리만 빼고). 외교와 뇌물을 사용하기도 하고, 온갖 경제적 압력을 가하거나 심지어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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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A 프랑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토고 대통령 실바누스 올림피오의 암살)


프랑스는 현 통화 체제에 속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처치하는 것에 한번도 주저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강제로 끌어내려지거나, 심지어 살해당하기까지 했으며,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스 정부에 고분고분한 인물들을 정권에 앉혔다. 그 첫걸음은 독립을 부여하기 전에 먼저 식민지들에게 "협력 조약"이라는 것에 서명시키는 것이었다. 이 합의안에 따르면, 신생 국가들은 행정부의 주요 부서 관리를 전부 프랑스 정부에 일임해야 하는데, 이것은 통화 발행권을 포함하여 프랑화 지역이라는 통화 연맹에 남는 서명을 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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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빌롱)


프랑스 공산당 의원 피에르 빌롱이 말했듯이, 경제, 통화, 금융 모든 분야에서 이 합의안은 옛 식민지들에게 법으로 주어지기로 결정된 주권들을 제약하고 있다. 왜 아프리카 국가들은 새로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권을 제약하는 조약을 수용했을까? 이는 그들의 프랑스에 대한 심리적인 예속 정도 그리고 갑자기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부담감과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식민지의 '멍에'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에 기반한다.


결국 이 아프리카 국가들은 농업 국가이거나 극도로 낮은 수준의 저개발 경제에 기반했을 뿐이다. 그러나, CFA 프랑의 효력이 발효된지 얼마 되지 않아 반란이 일어났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은 CFA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고, 극소수의 국가만이 성공했다.


프랑스는 CFA를 벗어나려는 국가들을 방해하기 위해 협박, 불안정화 유발, 그리고 암살과 쿠데타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취했다. 이 모든 것은 프랑스와 그들의 협력국 간의 불평등한 역학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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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이웃 아프리카 국가 간의 무역 금지 조치)


기니가 CFA 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을 때, 프랑스가 이에 대해 귀를 막고 무시하자, 1960년 기니는 자국만의 통화를 발행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은밀하게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기니 화폐를 유포하여, 엄청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켰으며, 기니를 경제 파탄 국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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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샹카라: 살해당한 희망)


또한 1962년 말리가 프랑화 지역에서 탈퇴하자, 프랑스는 말리의 이웃 국가들에게 말리와 무역을 하지 못하게 무역 제한 조치를 취하게했다. 결국 말리의 새 통화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고, 말리는 굴복했다. 말리는 다시 CFA 체제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국 화폐를 만들어 체제에서 벗어나려던 2명의 아프리카 지도자, 토고의 실바누스 올림피오와 부르키나파소의 토마스 샹카라가 암살당했다. 이 길고 긴 폭력과 억압의 발자취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CFA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는 주장에 의문이 들게 만든다.



CFA 프랑의 '악마와 같은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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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A 프랑의 설립에 필수적이었던 전제 조건들에 대해 다루었으니, 이제 CFA 프랑의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는 CFA 프랑은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관리되는 '아프리카 통화'로서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1970년대 후반, 소위 프랑화 지역의 '아프리카화'라 불리던 과정이 이루어졌는데, 두 개의 통화 연맹 중앙은행인 중앙아프리카 은행(BEAC : Banque des États de l'Afrique Centrale)과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 : Banque centrale des États de l'Afrique de l'Ouest)의 통화 발행권을 가진 본점들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전되었다. 더 나아가, 은행 경영진을 꿰차고 있던 프랑스인 대표단들의 숫자 또한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허울에 불과하며, 시스템의 본질에 있는 메커니즘 자체는 '식민 지배 시대와 달라진 게 없다.' 현재는, 소위 프랑화 지역의 4개의 근본 원리들에 의해 굴러가는데, 이것은 현재 프랑스가 프랑화가 아닌 유로화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하여금 CFA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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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유로화를 채택했음에도 불구, CFA 체제 관리권과 통화 송금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EU나 EU 회원국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발언권도 없다. 그 결과, 이 식민 지배의 산물은 사상적으로나 기능적으로 1945년의 그것과 변함 없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 체제를 떠받치는 4가지 기둥은 1) 고정 환율제(CFA 프랑을 처음에는 프랑스 프랑에 고정시키고, 현재는 유로에 고정시킴), 2) 아프리카 국가들과 프랑스 간의 자유로운 자본 이동; 3) CFA 프랑이 유로로 자유 태환은 가능하나 그 외의 통화로는 불가능해지는 것(심지어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두 CFA 프랑 사이에서조차!), 4) 이 말은 CFA 프랑으로 결제되는 대외 거래 이전에 유로로 환전되어 파리 외환 시장을 거쳐, 외환 보유고의 중앙화로 이어진다.


프랑스가 CFA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이 4가지 원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가 옛 식민지들의 경제, 통화, 재정, 정치 부문을 순전히 그들의 논리와 이해 관계에 따라 조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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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프랑화 지역에 설립된 기구들의 존재만으로(프랑스가 두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거부권을 쥐고 있다.), 프랑스가 여전히 CFA 프랑의 액면 가치, 즉 환율을 결정할 권리를 지닌다. 심지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미리 통지할 필요도 없다. 1994년 프랑스는 실제로 CFA 프랑을 50% 절하했고, 1999년에도 한 번 더 그런 조치를 가했다. 프랑스가 유로를 채택하던 그 시점에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통해 프랑스 기업들은 아프리카 지역에 설비 등을 투자하기보다 프랑스 본국에 돈을 송금함으로써 아프리카에서 얻는 이익을 사유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CFA 체제의 진정한 초석이 되는 것은 외환 보유고의 중앙화이다. 말 그대로 프랑화 지역의 중앙은행들은 그들의 외환 보유고를 무조건 프랑스에 예치해야 하는데, 이는 프랑스 재무부의 '경영 예금 계좌'라는 특수 계좌에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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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BEAC와 BCEAO는 거의 외환 보유고 전부를 프랑스 재무부 특수 계좌에 예치해야 했으나, 요즘은 50%만을 예치한다. 이런 경영 예금 계좌는 유로화로 저장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제 결제를 담보로 하여 입금되거나 인출이 가능하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의 근본 메커니즘은 다소 간단한데, 만약 코트디아부르가 프랑스에 카카오 4억 유로어치를 수출한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벌어들인 액수의 합은 곧 프랑스에 있는 경영 계좌에 입금된다. 반면, 코트디아부르가 4억 유로어치를 유럽 연합에서 수입한다고 하면, 경영 계좌에서 그만한 액수를 계좌 인출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프랑스가 태환성의 보증인으로 나서서 프랑화 지역에 보상으로 주는(quid pro quo) 것이다. 이것은 외환이 모자랄 때를 대비해 마련한 규정으로, 프랑스 재무부가 프랑화 지역의 중앙은행들에 CFA 프랑의 평가 절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외화를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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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CFA 체제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가져다준다고 명시된 이득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CFA 체제의 옹호자들에 따르면, CFA 프랑은 회원국들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 내 경제 통합을 촉진했음은 물론, 거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창출했다. 현실은 어떠할까? 피조와 실라에 따르면, CFA 체제는 아프리카 회원국들에게 4가지의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2개의 장애물은 일단 유로에만 연동되는 고정 환율제이다. 이미 잘 알려졌듯이,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화폐에 운용한다면, 자율적인 통화 정책을 펼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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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MOA와 CEMAC 두 통화 연맹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고, 실질적으로 또 다른 통화 연맹체, 즉 유로존에 종속되어 있다. 유로존은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들로 이루어져, 가난한 후진국들과는 완전히 다른 우선 순위와 필요를 지니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문델이 1997년에 한 설명에 잘 드러난다.


"만약 작은 나라가 대국에 환율을 일방적으로 고정시키게 된다면, 이것은 정책 결정 주권을 대국에 양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환율이 고정된 국가는 주권을 상실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통화의 운명에 대한 선택권마저 잃어버리며, 대국은 소국의 주권을 조종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보다 더 큰 화폐 이용 지역을 관리할 수 있으며, 국제 통화 시스템에서 더 많은 권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로존 국가들이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듯이, 고정 환율제가 의미하는 바는 이것이다. '프랑화 지역의 15개 회원국들은 개별 국가에게 환율 정책을 이용해 경제적 충격을 완화시키거나 지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개선시키는 것에 대한 원천 봉쇄 그리고 이것은 모든 방면에 충격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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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016 연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vs CEMAC vs UEMOA 성장률)


그러므로, 부정적인 여파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화 지역 국가들은 재정 이전이 불가해진 상황에서 단 1가지 선택권만이 주어진다. "내부 평가 절하". 이는 국내 물가에 대한 조정을 말하는데, 노동자들의 임금과 공공 지출의 축소, 세금 증대와 경제 활동의 저하를 통해 가능하다.


IMF 통계만 보더라도 고정 환율제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파멸적인 선택이었음이 입증된다. 2000년 이후, 고정 환율제가 운용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은 1~2% 수준이었고, 이는 변동 환율제를 채택한 국가들에 비해 한참 낮은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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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모로코 vs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의 1인당 GDP 격차)


특히 이런 격차는 IMF에서 주장하듯,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의 저성장 때문이다. 실라가 지적하듯,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와 같은 독립 후 프랑화 지역에서 탈피해 자신들만의 통화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국가들은 CFA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튼실하다.


3번째 장애물은 앞서 2가지 장애물에 뒤따라오는 것인데,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의 미약한 자금 조달력이다. 고정된 통화 가치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외환 보유고 고갈을 피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인데, 이것은 프랑화 지역의 중앙은행들이 역내 국가들의 내부 신용(정부, 기업, 가계에 빌려줄 수 있는 은행 대출 규모) 증가를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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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들이 교육받을 기회가 가장 적은 국가들.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 상당수는 아프가니스탄보다 낮다.)


2015년 인간 개발 지수의 꼴찌 국가 4개국은 부르키나파소, 차드, 니제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예외없이 프랑화 지역에 속하는 곳이다. 덧붙여,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 중 10개국은 UN에서 '최빈개도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물론 이 국가들의 저발전이 온전히 CFA 프랑 때문인 것만은 아니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딱히 더 나은 실적을 보여준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CFA 프랑이 프랑화 지역의 경제 성장과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CFA 국가 전체적으로 인간의 잠재력과 생산력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않은 상태인 게 분명하다. CFA 체제는 개별 국가들의 상업적 통합을 고무시킨 것도, 경제 발전을 활발하게 한 것도,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끌어올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CFA는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이 통화 정책을 자체적으로 꾸릴 능력을 거세시켰으며, 그들의 생산 동력을 은행 융자의 제한을 통해 마비시키고, 지나치게 고평가된 환율을 통해 공산품 시장에서의 경쟁력 또한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 불안정을 야기하는 자본 이탈을 부추겼고 이것은 그들의 사회에 엄청난 상흔을 남기고 있다.



지속 불가능한 현상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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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개입으로 암살되거나 살해당한 아프리카 지도자들)


상기의 내용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프랑화 지역 국가들은 CFA 체제를 폐기하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가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하는 자들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데 어떤 거리낌조차 없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코트디부아르이다. 2010년 이후, 코트디부아르는 대선을 통해 루항그 베그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 의해 인정받은 대통령은 알라상 누흐타하라는 자였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누흐타하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길 원했던 만큼, 그는 CFA를 수단으로 하여 베그보에 압력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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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프랑스 정부는 서아프리카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며 코트디부아르는 이 공동체의 일부이다. 프랑스 정부는 코트디부아르 정부가 서아프리카 중앙은행 내 계좌를 이용하지 못하게끔 뒤에서 부추겼고, 코트디부아르 서아프리카 중앙은행 지부들의 폐쇄를 종용했다.


그 때, 서아프리카 중앙은행의 경영진들은 코트디부아르 지부장이 코트디부아르 관리들에게 너무 물러터졌다며 사임을 강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은행들에 코트디부아르 내 은행 업무를 일체 정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베그보는 굴복하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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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프랑스는 보이지 않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서아프리카 중앙은행의 지원과 함께, 프랑스 재무부는 코트디부아르의 결제와 거래 활동을 중단시켜 버렸으며, 실제로 코트디부아르와 전 세계와의 모든 상업과 금융 거래가 실질적으로 봉쇄되었다. 코트디부아르 기업들은 수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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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금융 금수 조치에 직면하자, 코트디부아르 행정부는 자국 고유 통화를 창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마지막 가면을 벗어던졌다. 프랑스는 군대를 코트디부아르 근처에 배치시키고, 체제에 도전했던 여타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과 같이 정권을 군대로 전복시켰다.


위 에피소드는 프랑화 지역 내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CFA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단순무식한 주장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엘리트층들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CFA 체제를 지지한다. 결국, 프랑스 정부의 비호 아래 그들은 권력을 얻었고 그 권력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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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도자들은 프랑스 정부의 운영 방침에 협력하고, CFA 체제에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전 식민 열강의 '멍에'를 만끽하고 누릴 수 있다. 또한 근원적으로 프랑스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설계되긴 했지만, CFA 체제가 아프리카 일부 사회 계층들에게 분명히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CFA 프랑이 유로화에 연동됨으로써 CFA 국가의 수입업자들이 보다 유리한 가격으로 물품을 구입하게 도와주며 이를 통해 국내 생산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동시에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구매력을 갖춘 역내 중산층과 상류층들에게 서구의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자본 이동의 자유는 아프리카의 상류층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해외에 합법적으로 보관하기 용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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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점점 바뀌고 있다. CFA 프랑에 종지부를 찍자는 요구와 압력이 점점 증대되고 있으며, 더 많은 아프리카 경제학자, 지식인, 예술인과 사회 운동가들이 통화 식민주의를 종결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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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에서의 설문 조사 결과: 66% 이상의 시민들이 CFA 탈퇴를 지지)


그들의 주장은 대중들의 의식에 메아리처럼 퍼져나가고 있으며, CFA에 대한 문제 의식 각성이 일어남은 물론, 통화 독립이 없고서는 계속해서 프랑스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프리카 시민들이 진정한 통화 주권의 획득 없이는 그들의 운명을 자유롭게 개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점점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부흥 카페 Peter II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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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마선생님요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등은 전범국이었던 독일보다 더하면 더했지 악독한 국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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