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가장 위대했던 2등 선수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올림픽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아 장면은 육상 200m에서 1등과 3등을 차지한 흑인 선수인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 올리는 장면으로, OPHR, “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라는 뱃지와 검은 장갑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한 행동이였다.
헌데 이런 배경을 알았던 호주 출신의 은메달 선수인 '피터 노먼'은 그들에게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말하는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두명은 "이 호주 백인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은메달을 땄으니 그걸로 충분할 텐데!"라고 놀랐지만, 감동하면서 뜻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여분의 배지가 없었지만, 다른 미국인 선수의 도움으로 노먼도 이 배지를 달았고, 비록 함께 팔을 들지 않았지만 노먼은 정의를 상징하는 올림픽 배지를 착용하면서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허나 아직 인종 차별이 만연했던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며 이들을 선수촌에서 추방했다. 당시 IOC 위원장이자 미국 출신의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일부 몰지각한 니그로들의 추태"라면서 격렬히 비난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정작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체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독일의 지지를 얻다가 미국의 위원회로부터 제명된 과거가 있었다.)
두 선수 역시 미국에서 고생했지만, 노먼 역시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호주는 백인 우월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가 득세하던 곳으로, 백인이 아닌 사람의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까지 밀 정도로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그런 나라를 조국으로 둔 피터 노먼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이 행동으로 호주는 그에게 상을 주는 대신에 백호주의를 저버린 ‘배신자’로 낙인 찍으며 차기 올림픽 출전권 박탈이라는 징계를 내릴 뿐이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흑인 인권 활동에 참여했고, 호주 정부는 노먼은 함께 시상대에 섰던 두 흑인을 비판하면 복권시켜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평생동안 한번도 그것을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이후 세월이 지나고 미국에서도 두 선수의 행동은 인종차별에 맞선 위대한 노력으로 평가받았고, 피터 노먼 역시 위대한 영웅 중 하나로 여겨졌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그를 기리기 위하여 시상식 사진을 배경으로 조형물로 만들어질 때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비워두라고 말했다. 그것은 누구나 자신이 섰던 자리에서 “위대한 흑인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이자 행동이였다.
그렇게 비록 조국에서 잊혀 졌을 지라도 그는 언제나 과거의 행동을 자랑스러워했고, 세계의 사람들은 그의 의로운 행동을 칭송했다.
허나 호주 정부는 끝까지 그를 외면했고, 노먼은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장례식에 참석해 관을 들고 애통해했다. 함께 사진을 찍었던 카를로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두 사람은 약간의 좌절을 맛봤지만, 노먼은 자신의 조국인 한 나라와 맞서 고독한 싸움을 해야 했다."라는 말을 하였다.
이후 미국육상연맹은 피터 노먼이 죽은 10월 9일을 '피터 노먼 데이, 인권의 날'로 지정하였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노먼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난 2012년 호주 올림픽 위원회의 앤드루 레이 의원과 존 알렉산더 의원이 노먼에 대한 호주인들의 처사가 가혹했다며 의회 차원에서 44년 만에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면서 평생 동안 노력했던 인권운동에 대한 공헌에 감사를 표했다.
비록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고,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힘든 삶을 살았다. 허나 지금도 피터 노먼은 지금도 '위대한 은메달리스트','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2등'으로 불리며 기억되고 있다.
누군가는 올림픽에서 그의 행동을 만용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허나 그런 만용조차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용기였고 신념이였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위대한 선수로 여겨지며, 지금까지 존경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