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 일본 애니 왜색 검열의 폐해
일본 대중 문화 개방은 1998~2004년 6년 동안 4차에 걸쳐 이어진 일본 대중문화수입 허용 정책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현지 분위기를 살린 외국 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등 사실상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의아할 수도 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문화는 왜색이라 하여 양성적으론 금기시되고 있었다.
당시에 일본 문화 수입을 금한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과거 역사로 인한 일본의 잔학성에 대한 국민의 적대감이 컸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문화의 수입을 금지해 일본어를 비롯한 일본 문화가 한국의 실생활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 개방전에는 일본 만화책 정도는 볼 수 있었으나 일본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고쳐진 만화를 봤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일본문화 수입금지 기간에 한정적으로 수입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왜색을 제거하기 위한 검열 작업을 거쳐서 캐릭터들의 이름을 한국식 명칭으로 개명하는 작업과 동시에, 일본 문화가 드러내는 부분의 에피소드는 삭제 조치 되거나 화면에 노출되는 일본어의 경우 왜색 등의 이유로 한국어로 바뀌기도 한다. 하나 일일히 수정하기 힘든 세세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오프닝과 엔딩을 위시로 하는 애니송의 경우 전통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들여올 때 오프닝과 엔딩곡들은 번안을 해서 국내 가수들에게 부르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다른 독자적 음악을 만들어 넣는 경우가 많다. 특히 투니버스는 전통적으로 이 분야에서 매니아들을 만족시킬 퀄리티를 낸 것으로 유명 했다.
그래서 간혹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2004년 이전) 국내 더빙판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몇몇 회차가 일본 회차보다 적어 보이거나 등장 인물들 모두 한국 이름을 하고 있거나 애니송(오프닝, 엔딩)이 번안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물론 개방 이후에도 한국식 이름, 번안곡으로 내보내긴 한다.)
제일 먼저 애니메이션 다다다를 예시를 들어보자.
다다다는 일본에서 78화 방영되었으며, 오프닝+엔딩을 기준으로 1~39화까지를 1기, 40~78화까지를 2기(한국에서는 다다다2로 방영)로 나눈다. 국내에서는 2001년에 투니버스에서 방영되었는데 현지화를 했기 때문에 일본냄새(왜색)가 나는 5화가 빠지면서 한국에서는 73화로 완결되었다.
먼저 18화는 모모카가 루와 완냐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중요한 에피소드임에도 빠진 이유는 마츠리가 나와서이고(똑같은 이유로 카드캡터 사쿠라의 18화도 한국에서 잘렸다) 30화는 완냐의 할아버지가 나오지만 이 할아버지가 일본 무사의 복장, 하카마를 입은 청년 등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빠졌다.
44화는 일본 전래 명절인 코이노보리(남자 어린이들의 입신양명과 무사한 성장을 기원하는 행사로 매년 5월 5일)이 나와서 빠졌다. 71화는 일본 무속신앙과 불교 합성의 산물인 7복신이 나와서 빠졌으며, 72화는 에도 시대의 모습, 캐릭터들이 기모노를 입은 바람에 빠졌다. 그 외에도, 2기 오프닝은 투니버스에서 자체 제작한 곡으로 바뀌었다.
2009년 투니버스 다다다 재방영 분을 녹화하신 분께서 자막으로 미방영 분 애니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들도 한국식으로 변경되었다.
먼저 주인공들인 (위쪽부터 차례대로) 미유와 카나타는 강예나, 민우주로, 완냐와 루는 바바와 루다로 (이중 완냐는 일본판, 한국 코믹스판, 한국 애니판 이름이 모두 다르다. 한국 코믹스판은 작가의 완냐 이름 창조 계기-개짖는 소리 '완'과 고양이 울음소리 '냐'를 더했다는 것-를 한국식으로 번역해 '멍냐옹'이 되었다.) 개명되었다.
하나코마치 크리스틴은 크리스로, 작가를 투영한 미캉은 귤선생으로 개명되었다.
케이블 TV뿐만 아니라 공중파 (KBS, SBS, MBC)에서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들도 모두 한국화가 이루어졌다. KBS 등은 심의 및 왜색 규제가 매우 엄격했기에 일본 문화가 드러나는 에피소드등은 당연히 짜르고, 이름도 한국식으로 개명하고 방영되었다.
그러나 KBS에서 방영했던 어떤 애니메이션은 어떤 인물의 복장이 일본 복장이라서 괴랄한 편집을 하고 방영된 애니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고스트 바둑왕이었다. 이 작품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이 만화는 왜색이 매우 짙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만화다.
지상파답게 당연히 로컬라이징을 피할 수 없었는데 등장인물 이름이나 지명도 한국식으로 바꿔서 등장인물 모두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기본 캐릭터 이름들인 '히카루', '아키라'같은 등장인물은 '신재하', '조현성' 등으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작품 자체에 나오는 한국인 캐릭터가 나와서 팬들은 다시 한번 이를 어떻게 로컬라이징 할지 걱정했었는데 팬층에서는 북한으로 바꿔 남한 VS 북한식으로 바꿀 것이다, 중국으로 바꿀 것이다 등 의견이 치열했다.
결국 홍수영이 '홍쉬우잉'이란 이름으로 로컬라이징 되면서 중국인이 되었고 본작의 바둑강국도 중국으로 바뀌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버렸다. (근데 이게 현실 반영)
헤이안 시대는 신라 시대로 바뀌고 후지와라노 사이의 이름도 좌랑으로 바뀌어서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물론 사이의 일본식 전통 복장도 피해갈 순 없어서 여는 노래에선 사이가 나오는 장면을 자르거나 아예 모자이크로 떡칠해서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귀신으로 만들고 본편도 마찬가지로 모자이크로 떡칠해서 얼굴만 둥둥 뜨게 만들거나 명탐정 코난의 시체 처리 방법처럼 희뿌옇게 칠하기로 화면의 70%를 가린다거나 하는 편집으로 용케도 방영했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고스트 바둑왕 한장면, 상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사이의 복장
사이가 엑스트라 수준의 인물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등장인물이기 때문에 계속된 이런 막장 편집에 많은 시청자들이 항의를 했고 결국 kbs판 고스트 바둑왕은 방송 시간이 오후 4시로 옮겨진채 조기 종영을 맞게 된다. 그래도 시청률은 잘나왔는지 당초 방영 예정이었던 26화에서 앞서 52화까지 방영하는 기염을 하기도 했다.
2005년, 일본 문화 개방이후 왜색에 대해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에서도 방영했다. 보통 지상파에서 한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그 후속 에피소드만 더빙해서 방영하는 경우가 많고, 원래도 그럴 예정이었지만 KBS의 로컬라이징이나 편집이 워낙 막장이어서 1화부터 모두 재더빙하여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로컬라이징은 없어지고 원작 이름이 그대로 번역되고 별다른 편집 없이 75화 전 편이 모두 방영되었다. 또다른 사례 원래 예정되었던 날짜에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왜색때문에 방영날짜가 미뤄져서 방영된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바로 KBS에서 방영된 디지몬 테이머즈다.
원래는 파워 디지몬이 종영된 다음주인 2001년 12월 24일부터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극중 세나의 집이 왜색이라는 방송 프로그램 심의기구의 지적 때문에 방영이 지연되었다. 이건 전작에서도 한소라가 연루되었던 문제.
디지몬 어드벤처 방영 날짜 2000년 11월 7일 ~ 2001년 5월 14일 파워 디지몬 방영 날짜 2001년 5월 14일 ~ 2001년 12월 17일 날짜를 보면, 디지몬 어드벤처 끝난 바로 당일에 파워 디지몬이 방송하는, 어린이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덜어주는 놀라운 정성을 볼 수 있었다. 근데 테이머즈는 1달 정도의 공백 기간을 둔 뒤 2002년 1월 14일부터 2003년 1월 20일까지 KBS 2TV에서 방송되었다.
세나의 집은 일본 전통 가옥이기에 왜색이 짙다는 이유 때문에 방영이 늦어졌다. 1달동안 질질 끌다가 겨우 성공해서 방송. 이 모든 심의 과정이 괜한 짓으로 보일진 모르나, 꼭 필요한 과정...
짱구는 못말려 및 일본 일상 애니에서 "낫토"를 "청국장"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수많은 아이들이 청국장은 갈색 콩에 끈적한 실이 넘쳐나는 요리인줄 알고, 기모노를 보고 한복으로 오해하곤 하는 경우도 있고 결국 해당 심의기구가 사무라이 복장의 디지몬인 무사몬 하나만 문제 삼기로 결론을 내려서 1개 에피소드(11화)만 잘리는 선에서 마무리되었고 당초 예정보다 약 한 달 정도 늦은 2002년 1월 14일에 방영이 개시되었다.
무사몬의 모습
무사몬의 복장이 일본 사무라이 쇼군(장군) 복장이라는 이유로 11화는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튼 이 당시에는 심의 규정이 (특히 공중파 방송의 경우) 이렇게 엄격했었다. 일본문화개방 이전에는 모든 방송국이 현지화를 통하여 영상물을 방영해야 했기 때문에, 옛날 것일수록 현지화가 된 작품이 많다. 개방 이후에는 조금 덜해졌으나 아직까지는 아무리 일본문화가 개방되었다 해도 왜색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건 역사적으로 봐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거나 과격한 현지화는 엄청난 괴리를 낳는 것이 사실. 심지어 기모노를 입어놓고서 한복을 입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문화개방 이전에는 왜색이 심한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은 수입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규제가 심했고, 주로 방영했던 곳이 공중파 방송국였던만큼 옛날에는 현지화를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일본문화 전면개방과 수입 애니메이션의 주도권이 투니버스, 챔프 등의 케이블 방송국으로 넘어온지라 예전만큼의 현지화는 보기 힘들어졌다.
현재는 주로 모든 연령 시청가 혹은 12세 이상 시청가 등급의 저연령층 대상 애니메이션을 현지화하고 있다. (전연령 애니인데도 로컬라이징이 안 된 마루코는 아홉살 같은 예외도 있다. 다만 마루코는 아홉살은 일본 측에서 로컬라이징 하지 말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애초에 70년대 일본이 배경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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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누야샤"> 더빙판은 나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기모노, 신사, 일본신화 등 수많은 일본문화들이 점철되어 있는 작품임에도 모든 회차를 다 방영했고 심지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일본어 원음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더빙판에서 이름이 바뀐 인물들은 히구라시 카고메(유가영), 미로쿠(미륵. 이것도 사실 한자를 우리나라식으로 읽은 것에 불과함), 키쿄우(금강), 카에데(금사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