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제국이 망한 이유
수 양제의 지시로 공사한 2,700km 이상의 대운하
양제의 아버지인 수 문제도 이전에 운하 건설을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백성의 고충이 심하다는 것을 이유로 도중에 중단하였다.
그러나 뒤를 이어 즉위한 수 양제는 위와 같은 미친 사업을 끝내 달성하고 만 근성의 사나이...
이후로 대운하가 중국 전역의 물류유통을 활성화시키는 최고의 교통로가 되었다고는 해도
당대에는 백성들에게 막중한 노역을 부과하며 수많은 국고를 증발시킨 악마의 사업
수 양제의 유흥과 지방 순시용으로 제작한 대용주(大龍舟)
전각은 상하 4층, 높이 45척(11 - 14m)
선체 자체의 너비는 50척(14 - 17m), 길이는 200척(52 - 60m)
배 내부는 금은보화로 장식하고 황후와 비빈, 대신들에게도 자가선 부여
수행선이 1,000척을 넘어서 행렬이 전후로 무려 100리나 이어짐
※ 양측에서 죄수들, 인근 고을의 백성들이 끌고 다니게 함
대용주들을 끌고 다니는 데만 평균적으로 '8만여 명' 의 인력이 동원
※ 참고로 16C 조선시대 판옥선의 길이는 34m(최대)
개뻘짓의 전설이 된 수나라의 인력동원
1차 고수전쟁 - 수 문제의 1차 침공 당시 30만 병력 동원
2차 고수전쟁 - 수 양제의 1차 침공 당시 전투병만 113만 3,800여 명 동원, 호왈도 200만
▶ 보급인원은 전투병의 두배 이상 동원 : 『수서』 양제기 - 하편, 『삼국사기』 영양왕본기
3차 고수전쟁 - 수 양제의 2차 침공 당시 전투병 40만 동원
4차 고수전쟁 - 수 양제의 3차 침공 당시 수십만 병력 동원 추정
오아(五牙)
수 - 당 시대의 대형전선, 탑승 인원은 300 - 500명대(기록상은 700 - 800명대)
남북조 통일기와 고수전쟁기에 동원된 당대 최대의 누각전선
※ 문제는 이걸 고수전쟁기 당시 수백척을 건조하게 함
이 새끼 즉위하기 전의 수나라는...
문제의 '개황의 치' 로 "창고에 곡식과 피륙이 넘쳐 썩어나고, 더 이상 쌓아둘 곳도 없어서 그것을 각 군현에 조서를 내려 백성들에게 분배했다." 기록할 정도의 역대급 재정상태를 보이고 있었고, 등록된 기준으로도 호수 890만에 4,600만여 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당시 세계 원탑의 초강대국 이었다...
※ 심지어 개황의 치 당시의 재정상태는 수 멸망 이후 당이 건국된 지 100년이 넘은 시점인 현종시기 개원 말기 - 천보 초엽에 복구... (심지어 개원말 - 천보 초엽은 당의 전성기)
수 · 당 시기 군사들의 무장 고증
이런 놈들을 100만명(+ 보급병 200만명) 원정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이거 다 날려먹고도 나라가 바로 안망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