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고 기묘했던 28년전 추석 

격렬하고 기묘했던 28년전 추석 





 
 
1996년에도 민족대명절 추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1996년 추석은 성묘를 갈때 
 
주위를 살피며 태극기를 들고 가는 
 
기묘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명절 분위기를 뒤집어놓은 
 
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1996년 9월 18일 강원도 안인진리 해안에서 
 
좌초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된다
 
(당시 택시기사 이진규 씨, 68사단 해안 초소 등에서도 감지)
 
 
 


 
 
5분 대기조와 합동 조사팀이 출동
 
현장 감식 후 
 
북한 무장공비의 잠수함 침투가 맞는 것으로 판단
 
 
전군에 비상이 걸리고
 
군은 공비 추적 및 소탕 작전을 개시한다
 
 
 







 
 
 


 
 
동부 전선의 주요 사단들
 
702, 703특공연대, 수색대, 특전사 등의 부대가 
 
소탕 작전에 투입
 
 
 
예외를 제외하고 장병들의 휴가, 외출, 외박은 모두 통제된다 
 
 
 
해군, 공군, 해병대 등도 소탕 작전 지원
 
경계 태세 및 영공 감시 등 경계 강화.
 
 
 
 


 
 
공비 추적 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이광수를 생포 
 
작전과 인원 등에 대한 중요 정보를 얻음
 
 
 
 






 
 
 
아군과 무장 공비의 계속 된 
 
추격과 회피, 교전이 벌어지고 
 
 
 
 
 
 
 
다수의 무장 공비가 사살됐지만 

 
 



 
  - 특전사 이병희 중사 -
 
 
이병희 중사의 팀은 하방 탐색 중
 
이동하던 작전조와 마주치고
 
근거리 전투 발생, 교전 중 전사 

 

 
 
아군의 전사자와 부상자도 늘어간다
 
그렇게 작전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추석을 맞은 일부 국민들은 
 
군인들의 보호아래 성묘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음
 
(당시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먹을 것도 나눠주고 먹고 했다고 함)
 
 
 


 
 
더불어 무장공비 사태 당시 
 
강원도는 여행/관광, 농사/어업 등의 생업에 
 
지장을 받아 2500억 이상의 경제 손실을 입음
 
 
 





 
 
 
추석이 지나서도 무장 공비들과 
 
아군의 추격전과 교전은 계속 이어졌고
 
피로감이 누적되던 당시
 
 
 


 
강원도 인제군 연화동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작전조 두 명을 
 
특전사 장선용 상사가 사살하면서 
 
49일 간의 작전이 종결된다.
 
 
 
 
작전 기간 일일 지상 병력 43000명 투입
 
민관군 150만 이상 동원
 
 
작전 중 아군 피해
 
전사 - 14명 
 
군인 12명, 경찰 1명, 예비군 1명
 
민간인 4명 사망
 
27명 부상 

 

 
 
 


 
 
당시 북한 작전조는 
 
사격장 근처에서 싸리나무 작업을 하던
 
2사단 소속 표종욱 일병을 살해
 
전투복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
 
 
 
그러나 군은 이 사건을 표 일병의 탈영으로 간주하고
 
표 일병의 집으로 가 깽판을 부리다 
 
이후 표종욱 일병 시신이 발견되고
 
엄청난 비난을 받음.
 
 
 
 
 
 
소탕 작전 중 아군의 피해도 컸는 데 
 
작전 중 대령 계급이
 
전사하는 상황이 발생.
 
 
 
당시 3군단 기무부대장으로 
 
공비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현장 감식을 위해
 
출동한 오영안 대령은 감식 중 
 
숲속에 은신 중이던 작전조의 저격에 전사
 
사후 준장으로 추서 됨.
 
 
 
 
 
 
 
아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던
 
작전조는 조우한 민간인 3명을 살해함
 
 
김용수, 이영모, 정우교 씨는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중
 
작전조에 걸려 김용수, 이영모 씨는 조준 사격으로 살해,
 
정우교 할머니는 머리를 가격당해 사망.
 
 
 
 
 




 
 
당시 작전조는 한국군 12사단 마크를 붙인 
 
조잡한 위장복과 장교 모자를 쓰고 있었고
 
각인이 없는 자체 복제한 M16을 사용했으며,
 
 
 
이들 작전조 3명은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 22전대 소속 요원들이었음
 
당시 김정일이 1개 사단 줘도 안바꾼다고 자랑하던 최정예 병력.
 
 
 
 
 
 
 
생포된 이광수는 합동신문조와의 신경전에서
 
우리 측이 술을 따라주며 원하는 안주가 있냐는 질문에
 
 


 
북한에서 고급 요리인 광어회를 요구하며
 
요원들을 떠봤으나
 
금방 배달 된 광어회를 먹고
 
심경의 변화가 생겨 순순히 협조한 일화가 있음.
 
 
 


 
 
당시 침투했던 무장공비의 숫자가 
 
총 25명인지 26명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시간 말이 많았고
 
 
 
26명이면 마지막 1명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주제로 논쟁이 많았음
 
 
 
그러다 북한의 선전 방송을 통해 
 
침투 인원이 26명으로 확인됐고 
 
마지막 1명도 사실상 죽은 것으로 판단.
 
 
 


 
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 하면 
 
꼭 나오는 얘기가 헬기에서 레펠링 하던 
 
 
아군을 무장공비가 놀라운 
 
사격술로 원거리 저격했다라는 썰인데 
 
 
근거 없는 얘기이며 근접 전투 중
 
전사한 아군의 이야기가 과장된 것으로 봄
 
 


 
강릉 무장공비 사건 당시
 
작전조는 김영삼 대통령 암살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에서 개막 예정이던 전국 체전에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저격할 목적이었다고.
 
(작전조는 전원 저격수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짐)
 
 
 
다만 언론을 탈 경우 북한과의 관계가 완전히
 
경색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한동안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침투했던 목적은 일단 정찰, 사진 촬영으로 알려짐.
 
 
 
당시 공비들이 파괴하지 못한 카메라와, 렌즈, 
 
필름을 우리 쪽이 입수했고
 
 
 
사진을 확인해 보니 
 
화력발전소, 강릉 비행장, 군 기지, 기차역 등의
 
주요 시설들이 찍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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