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카의 저출산 다큐멘터리 촬영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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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만드는 저출산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 근데 관광은 못했다. 4일 내내 하루에 10~12시간씩 인터뷰만 하러 돌아다녔다.
일본에 가면서 '이제 한국한테 소득으로도 역전당하고 슈퍼 엔저 때문에 생활이 많이 어렵다던데'라는 생각을 하고 갔는데 첫 인터뷰부터 놀랐다.
첫 인터뷰는 일본 대학교였다. 그런데 여기 3~4학년들은 취업 걱정이 없었다. 구인난이 지속된 나머지 기업들이 돌아다녀가면서 졸업예정자를 미리 채용해서 5명 중 4명이 이미 취업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물론 대기업을 가려는 경쟁이 없는건 아닌데, 한국만큼 치열하지는 않았다.
이 와중에 취업을 안하고 있던 사람이 한명 있어서 '왜 취업을 안하느냐'라고 물어봤더니 '저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는게 모토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더라. 그래서 내가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인생도 즐기면서 살수 있지않냐'라고 말했더니 답변이 '회사야 좀 늦게 들어가도 되죠'였어서 좀 놀랐다.
그 다음 인터뷰는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참치집이었다. 거기서 알바 비스무리하게 일하는 21살 여직원이 한명 있어서 물어봤더니 '여건만 된다면 평생 여기서 일하고 싶다'라고 해서 '더 벌어서 더 좋은 생활을 하고 싶지 않느냐'라고 물었더니 '내가 원하는만큼 근무할수 있으니까 오후에 들어가서 애를 볼수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알고보니 애엄마였던 것이다. 21살인데.
참치집 사장을 인터뷰했다. 4대째 물려받은거라 나이는 30대로 젊었는데 그다지 큰 가게도 아니어보였어서 '왜 이걸 물려받았냐, 후회는 없냐, 조금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봤냐'라는 식의 질문(약간 무례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대본에 그렇게 적혀있었다)을 했는데 의아하다는 듯이 '나는 어릴때부터 이 가게를 물려받겠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적 없다'라는 답변을 얻을수 있었다.
뒤이어 '아이가 있다면 아이한테 가게를 물려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딸이 있는데 원한다면 물려주고 싶다'라는 답을 했었다.
분명 경제지표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일본 청년들이 훨씬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래서 '혹시 너희들은 결혼에 부담감을 갖고 있느냐'라고 물어봤는데 답변은 '물론 부담된다'였다. 처음으로 예상했던 답변이 나왔다. 그래서 '정확히 뭐가 부담이냐'라고 했더니 '결혼식 비용'이랜다.
알고 봤더니 일본 결혼식은 하면 한국 결혼식보다 훨씬 호화스럽게 하고, 축의금도 거긴 기본이 3만엔이라고 한다.
근데 한국에서 으레 나오는 집 얘기가 안나와서 '너희들 집 살 걱정은 안하니'라고 물어봤는데 '결혼할때 집을 굳이 사야 되나요? 집은 사고 싶을때 살수 있는걸요'였다. 거기는 결혼하기 전에 미리 (일본은 전세가 없으니)월셋집 잡고 같이 사는 문화가 보편적이라더라. 얘네들한테는 왜라는 질문까진 못해봤는데...
그 후에 만난 한일 부부한테서 그 답을 얻을수 있었다. 집을 사고 싶다면 집값의 90% 이상을 주담대로 충당할수 있고 이자도 1~2% 수준이라 집을 사는게 급한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내집마련에 급급한 이유는 '집값은 시간이 지나면 오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심지어 여긴 집이 오래되면 집값이 싸진다. 그야 오래된 집이니까. 그러니까 월세를 주나 집을 사서 대출금리를 은행에 주나 별 차이가 없는거다.
물론 도쿄 상급지는 오르는게 맞다. 근데 거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그리고 근본적으로 일본 청년들은 집이 투자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잘 안한다. 그건 돈 많은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더라.
그런데 이렇게 편안한데도 출산율이 1.2밖에 안되고, 일본 정부는 이걸 엄청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근데 한국은 0.7이니까 자산, 특히 부동산 가격 그리고 취업이 출산율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까 말한 한일부부의 한국인 남편한테 넌지시 한국어로 물어봤다. '여기 집 얼마냐' 저출산 다큐 찍는거니까 물어봐야지. 근데 의외로 한국보다 막 싸다거나 그렇진 않았다.(참고로 사는 곳은 치바였다)
그리고 애가 둘이길래 물어봤다. '학원비 부담되지 않느냐', 그러니 돌아온 답변이 '여긴 치바라 학원 뺑뺑이도는 문화는 없다. 도쿄는 좀 보내긴 한다'였다. 그래서 '애들은 그럼 학교 끝나면 뭐하고 지내요?'라고 물어봤더니 일본인 아내가 '집에 있죠'라고 답했다.
그럼 집에 애들이 혼자 있냐라고 물어봤더니 아내가 정규직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라는 답을 들을수 있었다. 사실 학원 뺑뺑이 자체가 맞벌이를 하니 부모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애가 집에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 생긴 문화에 가까우니 그럴수 있다.
그건 둘째치고 한국인으로써 이런 의문이 들수밖에 없었다. '정규직이었다가 파트타임을 하게 되셨다면 수입도 줄어들고, 거기다가 경력단절까지 생긴건데?'라고 물어봤더니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수입은 줄었죠.'라고 해서 '수입도 줄었는데 아이 둘을 키우는게 힘들지 않느냐'라고 되물어봤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도 그 답변을 듣고 의아해서 '아니 수입이 줄면 아이를 키우는게 힘들지 않냐? 그리고 직장에서의 경력이 끊겼는데 본인한테도 손해 아니냐'라고 되물었더니 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게 왜 손해인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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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고 나니 막판에 이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여기서 돈 얘기만 하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모든걸 돈으로 치환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취업도 '야 중소기업 가면 어떡해? 경쟁해서 좋은데 가야지. 돈 훨씬 많이 벌수 있잖아'라고 하고.
'취업이야 나중에 해도 되죠'라고 말하는 대학생한테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인생도 즐길수 있는거 아니냐', '고향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볼수 있는 일이라 좋다'라고 말하는 21살 참치집 여직원한테도 '대도시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봤냐', 참치집 사장한테도 '돈 더 많이 벌수 있는 일이 있는데 왜 참치집을 물려받았냐'. 한일부부 한국인 남편한테는 '자가냐 월세냐, 집값 얼마냐, 금리 몇%냐', 일본인 아내한테는 '정규직 그만두고 파트타임을 하면 금전적으로 수입이 줄어들어 힘들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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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 사회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직업을 고를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35.7%가 수입을 선택해 가장 많았고, 적성은 30.6%를 기록해 2번째였다. 2013년엔 적성이 38.1%로 1위였고 수입은 25.5%로 2위였는데 10년 사이에 뒤바뀐 것이다.
어느샌가 우리는 모든 대화의 기준, 모든 선택의 기준이 돈이 되어버렸다. 돈이 있으면 내가 너보다 위에 있는거 같고, 돈이 있으면 주둥아리 좀 하찮게 놀려도 될거 같고 돈 없는 사람은 하찮게 보이고, 내가 어디에 집 샀다고 하면 '너 집 얼마야?', 어디 취직했다라고 하면 '거기 초봉 얼마야?'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세상.
우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삶의 즐거움, 기쁨, 가치를 싹 다 돈으로 환산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10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변했나라고 생각해봤는데, 부동산 폭등, 동학개미 붐, 코인 붐이 떠올랐다. 최근 몇년간 우리 모든 신문을 '돈'이라는 주제가 덮어버렸다.
물론 돈 따지는게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돈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가치'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돈은 결국 수많은 가치 중 하나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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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는데, 여기서 이런 말을 한적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은 무조건 옳으며 따라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사실은 다수의 의견이 틀렸을수도 있는데.
이것도'가치'에 대한 교육이 미숙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드 같은걸 보면 결국 마지막은 '가족의 사랑'으로 끝날 정도로 가족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내세운다. 그게 맞든 틀리든 간에.
바이든이나 트럼프 연설만 봐도 (물론 뒤에서는 돈이 걸려있겠지만 최소한 앞에서나마) 가족 얘기를 많이 한다. 속으로는 아닐수 있어도 경찰관, 소방관, 군인 같은 직업을 최소한 겉으로나마 존중해준다.
반면 우리는 내가 직장을 구할때나 아이를 가질때나 무슨 행동을 할때나 어떤 사고판단을 하던 기본적으로 '수입, 돈'이 깔려있고 다른 가치는 모조리 무시당하고 있다.
왠진 몰라도 최근 5년, 7년 사이 우리 사회 전반을 부동산, 주식, 코인이 덮으면서 어떤 행위든 돈으로 환산해서 말하는게 너무 당연해졌다.
그러면서 사회에 사람들에 대한 존중은 완전히 사라졌고 어느게 가장 경제적인지, 효율적인지로만 생각을 하고 가족의 가치, 사랑의 가치 이런걸 말하고 있으면 비웃음을 사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출산율이 많이 내려간 원인 중 하나를 이런 '가치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 출산율이 높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의 급한 모습, 예를 들면 '이거 지금 아니면 언제 사냐, 지금 못사면 값 오를텐데'라던가, 아이는 돈 없어서 못 낳고 결혼식도 비싸서 못하고 내가 축의금 얼마 줄지, 내 직장 초봉이 3100만원인지, 3300만원인지가 대단히 중요하고 내가 사는 곳이 어딘지, 집값이 얼만지가 대단히 중요하고 모든 사회의 의사결정, 정치인들의 모습, 사회 지도층의 발언에서 우리의 가치라는 것을 찾아볼수 없다.
물론 우리 잘못도 있다. 진짜로 자기가 행복한, 자기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면 옆에서 꼭 한마디씩 하지 않느냐. '어? 나보다 못버네'니 '200충'이니 하면서. 사회가 그렇게 쳐다보니 그렇게 살고 싶던 사람도 그렇게 살기가 어렵다.
흑자 적자로 따지면 애 낳는건 상식적으로 절대 흑자가 될수 없다. 엄청난 양의 돈과 수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흑자가 될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대단히 약해졌으니 플러스 마이너스로만 따지게 되고 그러니까 아이를 낳을수가 없는거다. 결혼도, 사랑도 마찬가지고 모든게 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도대체 무슨 가치를 생각할까, 아니 가치라는 것을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비웃는 눈빛으로 보고 sns로 조롱하고 '나보다 못 버는 너희들은...' 같은 말을 쓰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