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중국의 극심한 사회 문제였던 영아살해 

근대 중국의 극심한 사회 문제였던 영아살해 



전쟁, 빈곤, 또는 기타 불가피한 이유로

부모가 키우던 아기를 버리거나 죽이는 일은 전세계적으로 있어 왔지만

'마비키(솎아내기)' 문화가 존재했던 봉건시대 일본과 더불어

중국 문화권은 그것이 유독 뿌리 깊은 악습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파견된 백인들이 거의 반드시 언급하던 야만적 광경이 바로

길거리 외진 곳에 묻히거나 버려진 아기 시체였을 정도




당시 유럽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엄청난 가난과 미신에 시달리던 19세기 중국 빈민층들은

낳아서 키울 아기와 버릴 아기를 철저하게 구분했다고 하는데,

유교 사상과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여아와 장애아는 특히나 자주 버려졌다고 밝혔다

아이를 빠르고도 죄책감 없이 죽이는 데에는

주로 길가에 버리기 또는 묻어버리기 등의 방법이 자주 이루어졌고

밥을 안 줘 굶겨 죽이거나, 물에서 익사 시키거나,

베개 따위로 숨을 막아서 살해하는 것도 빈번했다

그런가 하면 복건성 등의 일부 지방에서는

불교 승려들이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한 부모들을 위하여

아기 불탑(사진에 있는 것)들을 지었는데,

아기를 담은 바구니를 탑의 구멍에 쏙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구조다

여기에다 자신의 자식을 버리면 곧 죽을 핏줄의 명복도 빌어줄 수 있고

게다가 아기가 악귀로 환생해 부모에게 복수하는 것도 부처의 힘으로 막아준다고 믿어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러한 사례들과는 다르게

이국에서 찾아 온 기독교도들은 이를 절대 용납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었다

기독교에서 무고한 가족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주로 가톨릭 예수회)은 중국인 신도들에게 절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고,

아예 버려진 아기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제들로 이루어진 팀을 파견하여

매일매일 도시의 골목이나 갓길 사이를 살피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도 말고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을 따로 배운

계몽주의자, 공화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들도 이 악습을 깠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후 산아제한정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던 시골 주민들이 여아를 죽이거나 낙태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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